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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펜션 들어찬 해안…제주 한담마을엔 원주민이 없다

등록 2018-07-24 05:01수정 2018-07-24 14:21

해안과 노을이 아름다운 제주 애월읍 한담마을
20여 가구 넘던 마을에 원주민은 1명만 남아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붐벼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에 여름 휴가철을 맞아 국내외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에 여름 휴가철을 맞아 국내외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여름 휴가철을 맞은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은 좁은 ‘고망길’(골목길)까지 사람으로 가득했다. 일주도로에서 한담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마을에서 나오려는 차와 들어가려는 차들이 줄을 섰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홍콩 사람 스빌(22)과 조앤(24)은 처음으로 제주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들은 “(빅뱅 멤버 지드래곤이 차린) ‘지디카페’가 있다고 해서 왔다. 해안이 매우 아름답다”며 환하게 웃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의 유일한 원주민 강명자씨가 마을 해안가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의 유일한 원주민 강명자씨가 마을 해안가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170여년 전 형성된 이 마을은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잔잔하고 물이 맑다는 뜻에서 한담마을로 불렸다. 20여 가구의 주민들이 모여 살던 이 곳은 1980~90년대 개발 바람을 타고 하나둘 떠났고, 지금은 단 한 가구만 남았다.

“농사해도 돈이 안 될 때니까 돈을 많이 줄 테니 땅을 팔라고 해서 다들 팔고 나갔어. 그 돈이면 당시 애월에서도 얼마든지 땅을 살 수 있었어.“

한담마을 유일한 원주민 강명자(79)씨는 동네 주민들이 판 토지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고기를 잡거나 밭을 갈던 한담마을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집과 땅을 팔고 떠났고, 이들 외지인은 또 다른 이방인들에게 더 좋은 값으로 넘겼다. 강씨는 “그때만 해도 여길 떠난 주민들이 가끔 옛 집에 들러 ‘고망에 어떵 살멘?’(구멍에서 어떻게 살아)하면서 나무라곤 했다”며 웃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 버스 정거장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1회용 커피용기와 음료수 용기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 버스 정거장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1회용 커피용기와 음료수 용기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다.

마을 사람들이 떠난 마을은 유명 카페나 레스토랑, 펜션 등이 모인 관광촌이 되었다. 마을 공동체는 완전히 사라졌다.

강씨는 “영장 하나 나민 동네사람들이 모다들엉 잘 묻어 주곡 해신디 이젠 사람이 하나도 어서(사람이 하나 죽으면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어 잘 묻어주고는 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옛날엔 밤이 되면 모여 앉아서 자랑도 하고 남편 험담도 했는데 이제는 말벗도 없다”고 했다.

바다 환경도 많이 변했다. 강씨는 “옛날에는 물꾸럭(문어)이나 성게도 많아 시간 가는지 모르고 살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바다에서 나는 게 많아 하루가 짧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매일 한담마을을 산책한다는 이아무개(85)씨는 “과거에는 모두 초가였는데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냐. 옛날 이곳은 보석이었다. 이제는 바닷물이 오염돼 먹을 게 없다”고 말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에 여름 휴가철을 맞아 국내외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마을에 여름 휴가철을 맞아 국내외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한담마을뿐 아니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평대리, 종달리 등 해안과 중산간 지역은 제주 마을이 사라지고 카페촌으로 바뀐 곳이 여럿 된다. 자기 땅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주민들은 이방인들에게 땅을 내놓고 다른 곳으로 떠나고 있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은 한해 1500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1988년 200만명이던 관광객은 2013년 1085만명으로 1천만명을 넘은 뒤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3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관광객 2천만명, 상주인구 100만명을 상정해 제주도 환경 인프라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주가 그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제주관광공사가 지난해 제주대에 맡겨 실시한 ‘제주관광 수용력 연구’ 용역 결과를 보면, 관광 수용력의 한계를 2천만명 규모로 보고, 이 시기를 오는 2023~2028년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섬 속의 섬’으로 유명한 제주시 우도 관광에 나섰던 많은 관광객들이 성산포항에 내리고 있다.
‘섬 속의 섬’으로 유명한 제주시 우도 관광에 나섰던 많은 관광객들이 성산포항에 내리고 있다.
우선 쓰레기매립장과 하수처리장이 포화상태다. 지난 6월 말 기준 제주지역 하수처리장 8곳의 전체 시설용량은 24만t인데 하루 유입 처리량은 21만3220t으로 88.8%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구가 집중된 제주시 동 지역 가동률은 97.7%에 이르러 사실상 한계치를 넘었다.

일부 주민들은 관광객이 제주에서 사용한 쓰레기와 하수 처리에 오염 원인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주도는 환경보전기여금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생활폐기물 및 하수 배출, 교통혼잡 유발 등을 대상으로 기여금 책정에 대한 용역을 실시한 결과 관광객 1인당 평균 8170원의 부과금 부담을 예상했다. ‘섬 속의 섬’ 우도는 지난해 8월부터 렌터카 등 일부 자동차의 운행 및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우도면은 주민수 1900여명이지만, 등록차량은 1160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이륜자동차는 1928대가 있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근본적으로는 너무 많은 관광객이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도록 관광객 총량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발표한 서귀포시 성산읍 중산간마을에 걸린 펼침막
정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발표한 서귀포시 성산읍 중산간마을에 걸린 펼침막
개발시대 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성일 관광학 박사는 “제주도의 상황은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전조 경향을 보이고 이다.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하는데 각종 지표나 사업들을 보면 아직도 양적 성장에 치중하고 있다. 제2공항 건설도 그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고동환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관광을 산업보다는 성찰이나 사유 등으로 보지만 우리는 경제적 성장을 꾀하는 산업으로 인식한다. 과도하게 관광에 산업적 역할과 의미를 부여하는 바람에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관광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복지, 문화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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