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시 축석고개에 세워진 호국로 기념비 아래 현판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 제공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찬양 문구로 논란을 빚어온 경기도 포천시 축석고개의 ‘호국로 기념비’가 올해 안에 이전된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이전’이 아니라 ‘철거’를 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17일 포천시와 시민단체의 설명을 들어보면, 포천시 소흘읍 축석고개 어귀에 국도 43호선 확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호국로’ 기념비를 올해 안에 이전하기로 했다. 포천시는 기념비가 시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민원 때문에 내부 논의를 거쳐 이전을 결정했으나, 이전할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높이 5m, 폭 2m 크기인 호국로 기념비는 1987년 12월10일 세워졌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로 쓴 호국로(護國路)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기념비 아래 현판에는 “개국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써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는 내용의 찬양 문구가 적혀 있다.
경기도 포천시 축석고개 앞에 1987년 세워진 높이 5m, 폭 2m 크기의 호국로 기념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로 쓴 호국로(護國路)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포천시 제공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 등 포천지역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전두환은 내란,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군인의 신분으로 자국의 국민을 학살한 범죄자”라며 공덕비의 철거를 요구해왔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반란(내란) 수괴죄와 내란목적살인죄 등 13가지 혐의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기념비에 하얀 천을 씌워 가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5월18일에는 한 60대 남성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분노를 느낀다”며 하얀 천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사건도 있었다.
이명원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이전 결정을 내린 공무원과 포천시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철거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우리 역사의 부역자들이 한 행동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포천시 관계자는 “이전과 보존, 철거 등을 두고 시정조정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단체는 철거를 주장하지만 도로 이정표 등의 구실도 있어 철거하지 않고 시민 눈에 덜 띄는 곳으로 옮길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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