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 화재가 난 인천 남동구 세일전자 제조공장에서 소방관들이 휴식을 하고 있다. 이날 화재는 오후 3시43분께 건물 4층에서 발생했다. 인천/연합뉴스
“우리 딸이 엄마한테 살려 달라고 전화를 했대요. 갇혀 있다고 살려달라고…”
21일 인천 남동공단 세일전자 화재로 숨진 이아무개(31·여)씨의 아버지(59)는 인천길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비통해했다. 생때같은 자식을 불의의 사고로 보낸 그는 “내 자식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려달라”며 통곡했다.
이날 화재는 45분 만에 초기 진화가 이뤄졌지만, 건물 내부에서 불길과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퍼지면서 이씨를 포함해 모두 9명이 숨졌다. 이 중 7명은 대피조차 하지 못하고 4층에 갇혀 숨진 채 발견됐다.
인천소방본부는 이 공장 4층 휴대전화 전자회로기판 검사실과 식당 사이 복도 천장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4층에는 사무실과 검사실 등에 2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낮에 발생한 화재지만, 내부에 있던 전자부품과 샌드위치 패널이 타면서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가 4층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노동자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뛰어내리거나 유독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4층에서 숨진 7명 가운데 5명은 전산실에서, 2명은 식당에서 참변을 당했다. 불이 번진 검사실 안에는 포장용 박스도 다량으로 쌓여 있었다.
또 다른 여성 노동자 4명은 4층 창문 쪽에 머리를 내밀고 구조를 기다리다가 계속 뿜어져 나오는 유독가스를 견디지 못하고 1층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이었다. 이 가운데 2명이 숨지고, 2명은 위독한 상태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이 비상구 반대쪽에서 뛰어내렸거나 숨진 것으로 나타나 불길과 유독가스로 인해 비상구로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4층에 있던 다른 노동자들은 자력으로 대피했거나 구조대의 도움으로 현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 직원 ㄴ(34)씨는 “유독가스를 참지 못한 동료들이 창문으로 뛰어내리거나 계단으로 탈출하는 것을 지켜봤다”며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고통스럽게 설명했다. 세일전자 노동자들은 2교대로 일하는데, 전체 130명 가운데 이날 75명이 근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지상 4층짜리 이 공장은 불이 난 4층을 제외하고는 9명이나 숨진 화재 현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쩡했다. 소방당국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등이 순식간에 타면서 인명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추현만 인천 공단소방서장은 “첫 소방차는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소방관들이 도착하기 전에 직원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내부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세일전자 안아무개 상무이사는 “불이 난 뒤 경비실에서 화재 비상벨을 눌렀고 4층에서도 벨이 울렸다. 스프링클러와 소화전도 제대로 작동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이날 인명 수색을 마치고, 22일 중 화재 원인과 소방 설비 설치와 작동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인천시는 이날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지원을 위해 이강호 남동구청장을 본부장으로 한 사고수습본부를 꾸렸다.
이날 불이 난 세일전자는 1989년 설립된 회사로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전자회로기판을 주로 생산하며 종업원 수는 350명, 2017년 매출액은 1천64억원이었다.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이 회사를 직접 방문해 우수 중소기업이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세일전자 쪽은 이날 늦은밤 인천 길병원을 찾아 유족에게 인명 사고 발생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 거듭 사과했다. 세일전자 관계자는 “밤 9시40분까지 경찰 조사를 받느라 장례식장에 오지 못했다”며 “화재 당시 스프링쿨러 작동 여부와 화재 원인, 사망자 소속 등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하 권지담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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