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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엽총 살인 피의자, 그는 마을서 ‘유령’이었다

등록 2018-08-22 17:00수정 2018-08-23 14:02

222명 사는 작은 마을 임기2리는 충격에 적막감
피의자 김씨, 마을 골짜기에 떨어져 혼자 살아
사격 연습한 듯 박스에 구멍…“총 소리 시끄러웠다”
주민들 “얼굴 본 적이 없어” “말을 나눈 적 없어”
2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 ‘봉화 엽총 살인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77)씨 집 마당에 사냥용 산탄총 탄피가 흩어져 있고, 연습 사격으로 구멍이 뚫린 종이 상자가 널브러져 있다.
2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 ‘봉화 엽총 살인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77)씨 집 마당에 사냥용 산탄총 탄피가 흩어져 있고, 연습 사격으로 구멍이 뚫린 종이 상자가 널브러져 있다.
“몇 년을 한마을에 같이 살았어도 총 쏜 그 남자 얼굴 본 주민이 거의 없을 정도라니까.”

22일 정오께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 임기역 건너편에서 만난 86살 여성은 평상에 걸터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보통 마을에 새로 이사 오면 경로당에 인사하러 오는데 그 사람은 지금까지 코빼기도 안 비쳤다. 나는 시집 와서 여기 평생 살았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또 “나는 어제 공공근로 한다고 저기서 풀 뽑고 있었는데 저쪽 골짜기서 ‘탕’ 소리가 들렸다. 짐승 쫓아내는 소린 줄 알았는데, 뉴스 보고 그 남자가 사람을 총으로 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참 기가 막힌다”며 혀를 찼다.

전날 오전 9시13분께 산으로 둘러싸인 작고 평화로웠던 마을 임기2리에서는 총성 세 발이 울렸다. 임기2리 북쪽 골짜기 온덕골에 사는 김아무개(77)씨가 주민 임아무개(48·승려)씨에게 사냥용 산탄총(엽총)을 쐈다. 김씨는 이후 9㎞ 떨어진 소천면사무소로 가서 공무원 손아무개(47)씨와 이아무개(38)씨에게도 네 발을 발사했다. 공무원 2명은 숨졌고, 주민 임씨는 다쳤지만 목숨을 건졌다.

2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 ‘봉화 엽총 살인사건’ 피의자 김아무개(77)씨의 아로니아밭 끝쪽에 그의 집이 보인다.
2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 ‘봉화 엽총 살인사건’ 피의자 김아무개(77)씨의 아로니아밭 끝쪽에 그의 집이 보인다.
임기2리는 주민이 222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김씨는 그 중에서도 4가구밖에 살지 않는 온덕골에 떨어져 살았다. 아랫마을에서 온덕골 쪽으로 700m를 올라가면 김씨의 집이 나온다. 김씨의 집 마당에는 엽총 탄피 10여개가 흩어져있었고, 마당 곳곳에는 무언가를 태운 흔적이 발견됐다. 마당 뒤쪽에는 김씨가 사격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이는 구멍 뚫린 종이 상자 3개가 나뒹굴었다. 마당에 세워진 김씨의 승용차 앞 유리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김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주민들이 그에 대해 아는 사실은 김씨가 경기도에 살다가 아내, 자식과 떨어져 이곳에서 혼자 지냈다는 것 정도였다. 김씨는 2014년 11월 이 마을로 귀농했고, 여전히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경기도 수원으로 돼 있었다. 김씨의 집 아래쪽에 사는 한 남성에게 묻자 “찾아온 사람도 못 봤고 친하게 지낸 주민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집 아래쪽에 사는 여성은 “마을에서 만나도 인사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로니아밭에서 새를 쫓는다고 총을 쏴서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만난 82살 여성은 “그 사람은 동네 사람을 찾지 않았고, 아쉬운 일이 있으면 이장만 찾아갔다. 길 가다가 스쳐 지나간 적은 있지만 말 한마디 해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의 집 옆에도 사람이 살았는데 그 유별난 사람 때문에 불편했는지 지난 몇 년 동안 두 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 ‘봉화 엽총 살인사건’ 피의자 김아무개(77)씨 집 마당에 엽총 사격으로 구멍이 뚫린 종이 박스가 널브러져 있다.
2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 ‘봉화 엽총 살인사건’ 피의자 김아무개(77)씨 집 마당에 엽총 사격으로 구멍이 뚫린 종이 박스가 널브러져 있다.
김씨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는 한 마을 주민은 “김씨가 4년 전 집을 지어 이사 왔을 때 나와 이장을 포함해 주민 몇 사람이 집에 가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별로 말이 없었다. 성격이 특이해서 차를 몰고 가다가 다른 주민 차와 마주치면 절대 먼저 비켜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봉화 엽총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봉화경찰서는 이날 오전 11시 봉화경찰서 대회의실에서 첫 언론 브리핑을 열어 살인 등 혐의로 김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선섭 봉화경찰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피의자는 2년 전부터 이웃 주민과 상수도와 쓰레기 소각 문제로 갈등을 겪어오다가 주민을 상대로 범행했고, 상수도 민원 처리에 불만을 품고 면사무소 직원에게도 범행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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