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관광객들이 남북 분단의 최일선 현장인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는 남북의 정상이 손을 잡고 거닐며 ‘평화’를 얘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판문점 주변에서는 북한을 ‘북괴’라고 불렀다. 아직도 접경 지역에서 두 나라는 ‘동반자’가 아닌 ‘적’이었다.
지난 22일 다문화가정 15명과 함께 판문점 경비를 맡는 공동경비구역(JSA) 부대의 안보견학관을 찾았다. 판문점에서 약 4㎞ 떨어진 이 안보견학관은 판문점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안보 교육을 받고 전용 차량으로 갈아타야 ‘널문리’로 갈 수 있다.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선언으로 ‘이제 봄이 오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으로 안보견학관에 들어섰지만, 이 곳은 아직 한겨울이었다. 견학관의 영상 브리핑은 여전히 북한을 여전히 ‘북괴’라고 부르고 있었다. 북괴란 냉전 시대에 북한을 낮춰 불렀던 말로, 북한 괴뢰의 준말이며, 북쪽의 꼭두각시, 북쪽의 허수아비라는 뜻이다.
지난 22일 오후 관광객들이 공동경비구역(JSA) 안보견학관에서 도끼만행 사건 등 판문점 일대에서 발생한 주요사건 안내판을 둘러보고 있다.
영상물은 판문점 일대서 일어난 1968년 트럭 피습, 1976년 도끼 만행 등 사건을 보여주며 ‘분단 이후 북괴의 무력 도발이 3천회 이상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또 공동경비구역 부대는 ‘세계 유일의 한-미 연합전투부대’라며 ‘적과의 거리가 1m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늘도 적과 마주한다’는 등 표현은 은연 중에 북한군이 ‘적군’임을 강조했다. 정부가 올해 말 발간할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구를 삭제하기로 했지만, 이 곳에선 아직 남의 이야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관광객들은 담담하게 남북 평화를 기원했다. 초등생 아들과 함께 이 견학에 참여한 필리핀 출신으로 귀화한 박성희(36)씨는 “전쟁 때문에 분단됐다고 들었다. 남북이 상대를 존중해 꼭 통일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허호정(14·포천 영북중 2학년)군은 “분단이 실감 난다. 남북이 싸우지 말고 협력해 함께 발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3 땅굴에서 만난 중국계 미국인 왕(50)씨는 “최근 조성된 한반도 평화 무드를 희망을 갖고 보고 있다.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국제 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하고, 북한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년간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평화·생태 교육을 해온 노현기 파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디엠지(DMZ) 일대는 아직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반공·안보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제 평화의 시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지난 22일 경기북부지역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구성원 15명을 초청해 판문점 등을 둘러보는 ‘현장 안보 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판문점과 제3 땅굴 등 파주 디엠제트 일대에는 평일인데도 가는 곳마다 관광버스가 주차장을 가득 메워 최근 불고 있는 ‘평화의 바람’을 실감케 했다. 지난해 48만명이 찾은 디엠제트 관광객 수는 외국인 12만5천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34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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