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지난 14일 밤 강북구 남양동 옥탑방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개발계획(마스터플랜) 발표와 추진을 보류하겠다”고 26일 밝혔다. 지난 7월 싱가포르에서 이른바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 이후 서울 집값이 치솟자 자신의 발언을 뒤늦게 수정한 것이다. 서울시장이 부동산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개발 계획을 발표해 집값 불안과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 시장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관련 서울시 입장’을 발표했다. 박 시장은 입장문에서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발표와 추진은 현재의 엄중한 부동산시장 상황을 고려해 주택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재추진 시점에 대해선 “일단 부동산시장이 안정화돼야 한다”고만 답했다.
박 시장은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해 “여러 가지 복합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막개발을 막기 위한)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이 재개발 관점으로 해석되고, 관련 기사가 확산되면서 부동산 과열 조짐이 생기는 하나의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는 최근 주택시장이 이상 과열 조짐을 보여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주택시장 안정이 최우선으로 돼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실질과세의 원칙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서울시 행정2부시장 직속의 ‘부동산 상황 점검반’을 설치하고 운영할 방침이다. 박 시장은 또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24만호 공급 등을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서울의 집값 불안은 시장에 위협적이지 않은 정부의 보유세 개편안과 함께 박 시장의 발언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서울 아파트값은 4월부터 진정세로 돌아섰지만, 7월10일 박 시장이 싱가포르에서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이 담긴 ‘서울2030 플랜’을 언급하면서 여의도와 용산 일대 집값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어 같은 달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보유세 개편안도 ‘보유세 부담이 크지 않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면서 집값 상승 폭을 키웠다.
실제로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값 동향’을 살펴보면, 박 시장의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 직전인 7월9일부터 이달 20일 사이 아파트 매맷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여의도가 속한 영등포구로 1.81%가 올라 1위였다. 용산구도 1.76%가 올라 3위를 기록했다. 이런 분위기는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같은 기간 서울 전체적으로도 평균 1.14% 가격이 올랐다. 특히 20일 기준 지난 13일 대비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맷값은 0.37%가 올랐는데, 이는 30주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이렇듯 7월부터 여의도와 용산을 시작으로 서울 전역의 집값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박 시장은 관련 발언 이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도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에 따른 집값 급등과 관련한 지적에 대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하며 다소 안이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박 시장이 직접 나서 입장문을 발표했고, 기자회견 사실도 발표 4시간 전인 오전 10시께 출입기자들에게 공지됐다. 그만큼 서울시 집값 급등에 긴급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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