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모가 비치된 서울시 자전거 공유 서비스 ‘따릉이’ 대여소. 서울시 제공
다음달 28일부터 시행되는 ‘자전거 안전모(헬멧) 의무 착용’은 애초 전기자전거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법안 심의과정에서 엉뚱하게 일반자전거로까지 안전모 착용 의무화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26일 <한겨레>가 도로교통법 개정 과정을 살펴보니, ‘자전거 운전자와 동승자는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한다’는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는 처음부터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을 목적으로 발의된 내용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자동차’로 분류돼 온 ‘전기자전거’를 운전면허 없이 운전할 수 있는 ‘자전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기자전거에 의무적으로 적용돼 온 안전모 착용이 일반자전거로까지 확대 적용된 것이었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6년 10월 대표 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의 법률안 참고사항에는 이 법안에 대해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및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의결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송 의원이 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은 자전거 안전모 의무 착용 조항을 담은 것으로 이는 전기자전거 활성화를 위한 관련 법과 연계돼 있다는 뜻이다.
송 의원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하기에 앞서 자동차로 분류돼 온 전기자전거를 일반자전거로 전환하기 위해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과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동안 전기자전거를 운전하기 위해선 면허를 따야 했고, 안전모도 의무적으로 써야 했다. 전기자전거를 면허가 필요 없는 일반자전거로 변경하면서 안전모 의무조항이 없던 일반자전거에 관련 조항이 생겨난 된 것이다. 법 개정의 목적이 일반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송 의원도 지난 1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 포럼에서 만난 제주도민이 전기자전거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한 것이 개정안을 마련한 계기”라고 밝혔다. 국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월21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안전 및 선거법 심사 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한 전문위원은 “(안전모 의무화 조항은)사실상 전기자전거가 자전거가 되면서 필요한 조항”이라고 말했다.
안전모 착용 의무화가 전기자전거 활성화를 위해 부수적으로 추진되다 보니, 자전거 이용자의 목소리는 사실상 반영되지 못했고, 관련 논의도 부실했다. 같은 날 법안심사 소위에서 이용호 무소속 의원과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실적으로 안전모 착용 의무화가 어렵지 않으냐”고 지적했지만,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모든 자전거 운전자에 대해 안전모 착용 의무화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전기자전거 운전자에게만 이를 적용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해당 전문위원은 “(안전모 착용 의무화는) 전기자전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조문을 만들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민갑룡 경찰청장(당시 경찰청 차장)이 “계도와 교육을 위해서 (안전모 의무 착용) 입법이 필요하다”고 법안 통과를 호소했고, 의원들은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에서 받아들였다. 이후 이 법안은 추가 논의 한 번 없이 다른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과 통합된 법안으로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자전거 문화공간 ‘약속의 자전거’ 오영열 대표는 “자전거 안전모 의무화를 추진했던 대부분의 국가는 공청회나 토론회를 열어 시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했으나, 우리나라는 그런 논의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탁상입법’이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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