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제비로 인해 오사카 시내에서 큰 간판이 다리로 떨어졌다.
25년만에 가장 강력한 태풍이 휩쓸고 간 일본 오사카 시내는 5일 오전 폐허 속에서 평온을 되찾았다.
아직 오사카 도로에는 태풍으로 날아간 간판과 뿌리째 뽑혀나간 가로수와 전신주, 물에 잠긴 자동차 등 피해 상황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도심 곳곳엔 폭우와 강풍에 어지럽게 쓸려온 쓰레기더미가 쌓여 일본 특유의 깨끗함과 깔끔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의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는 오사카에서는 강풍에 에어컨 실외기가 날아가 사람이 다쳤고, 70대 남성은 주택 발코니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보도했다.
오사카 최대 번화가로 평소 인파에 밀려 다녀야 하는 도톤보리와 신사이바시는 사람이 적어 아주 썰렁한 상태였다. 간사이 공항 폐쇄로 한국과 중국 등 외국 관광객이 입국하지 못해 거리엔 관광객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난바역 근처에서 라멘집을 운영하는 아키코(65·여)씨는 “평생 이런 강풍은 처음 겪어봤다. 간판이 날아가 행인이 다칠까봐 아들과 함께 간판을 묶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빨리 태풍이 지나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톤보리 상인 야마모토(57)씨는 “태풍은 지나갔지만 공항 폐쇄로 관광객이 줄어 걱정이다. 하루 빨리 다리가 보수돼 공항이 열릴 수 있게 정부가 복구에 힘을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풍 제비로 인해 오사카의 한 거리에서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자전거가 쓰러져 있다.
전날 오전부터 태풍 소식을 듣고 도망치듯 문을 닫았던 길거리 상인들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게를 정비하고 있었다. 4일 오후까지만 해도 곳곳에 배치돼 행인과 관광객을 돕던 안전요원들은 철수했고, 거리엔 미화원들이 나와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간사이 공항 폐쇄로 발이 묶인 관광객들은 항공기 운항이 언제 재개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각 호텔 로비에 나와 북새통을 이뤘다. 오사카 철도 중심인 난바역도 5일 오전 활기를 되찾았다. 운행이 중단됐던 철도 노선들의 운행이 재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철도는 여전히 운행이 중단돼 있다. 승객들은 역무원을 붙들고 공항 철도의 운행 재개에 대해 문의하고 있었다.
전날 일본 서남부를 강타한 제21호 태풍 제비로 인해 최소 9명이 숨지는 등 일본은 큰 피해를 입었다. 오사카의 중심 공항인 간사이 공항은 폭우로 활주로와 주차장 등이 침수돼 공항 전체가 5일 오전까지 폐쇄된 상태다. 이 때문에 간사이공항에서 국내선과 국제선 170여편이 결항됐다. 간사이 공항은 오사카 남부 해상 인공섬에 있다.
오사카 난바역의 전광판에 일부 노선의 운행 중단이 표시돼 있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4일 오후 1시30분께 간사이 공항과 육지를 잇는 다리와 주변에 정박해있던 유조선이 충돌해 다리가 일부 부서졌다. 이 유조선은 공항에 연료를 운반하고 주변에 정박해있다가 강풍에 휩쓸려 다리 남쪽과 충돌했다. 이로 인해 공항에 있던 여행객과 공항 인력 수천명이 공항 인공섬에 고립됐다. 이 다리는 언제 복구될지 예상할 수 없는 상태다. 엔에이치케이(NHK)는 “다리 재개통 시점이 아직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이 다리가 복구될 때까지 공항 이용객들은 배를 이용해 공항을 오가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장으로 오사카에 온 김성용(48)씨는 “구입한 물품을 한국으로 가져가 6일까지 납품해야 하는데, 공항이 폐쇄돼 인근 나고야 공항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태풍과 관련해 한-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태풍 피해에 대해 일부 한국 네티즌들이 붙인 악성 댓글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커피숍 점원 미우(24·여)씨는 “어제 일본 태풍 기사에 달린 한국인들의 댓글을 봤는데, ‘일본 원숭이들은 태풍에 다 떠내려가라’는 내용이 있었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이웃나라의 어려움에 대해 이런 댓글은 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사카/글·사진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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