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관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장이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르면 내년부터 주민이 지방정부를 거치지 않고 조례 제·개정안과 폐지안을 지방의회에 제출할 수 있게 된다. 현행 8 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도 지방소득세·지방소비세 비율을 늘려 6 대 4로 조정된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1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은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치분권 로드맵’의 내용을 토대로 마련됐다.
내용을 보면, 주민이 지방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조례의 제·개정, 폐지안을 지방의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 직접발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지금은 주민이 지방정부에 조례 제·개정, 폐지안을 지방의회에 제출해달라는 청구만 할 수 있다. 청구요건도 까다롭다. 광역시·도는 주민의 100분의 1에서 70분의 1 이상, 기초 시·군·구는 50분의 1에서 20분의 1 이상이 청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주민발안제가 도입된 1999년부터 18년 동안 전국적으로 발안된 건수는 239건으로 연평균 13.2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39.3%(94건)는 2003~2005년 발의된 무상급식과 관련한 안이었다. 이를 빼면 전체 145건으로 전국적으로 연평균 8건밖에 안 된다.
주민직접발안제를 위해 자치분권위는 조례안 제출에 필요한 청구인 규모도 지금보다 30% 이상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행안부는 ‘주민발안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안을 오는 11월 중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주민소환과 주민감사 청구, 주민투표 청구 요건과 개표 요건도 완화하기로 했다. 주민투표 청구 대상을 지방정부의 재정, 예산 관련 사항 등까지 확대하고 주민소환 청구 대상자에 비례대표 지방의원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주민감사의 경우 청구인 수를 30~40% 낮출 계획이다.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국세에 견줘 지나치게 낮은 지방세 비중은 상향 조정한다. 해마다 복지비 지출이 증가하는 등 지방재정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재 8 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 대 3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6 대 4로 높일 방침이다.
로드맵에는 애초 제2국무회의 신설, 자치입법권 확대, 자치단체 사무범위 확대 등 지방분권과 관련해 헌법 개정이 필요한 내용도 들어 있었지만, 개헌이 무산되면서 이번 종합계획에는 관련 내용이 빠졌다. 다만 제2국무회의 대신 대통령을 의장으로 국무총리, 관계부처 장관, 자치단체장 등이 정례적으로 만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설치할 근거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행안부는 이번 종합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23개 법령을 제·개정하고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한편에서는 이번 종합계획이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해 행안부가 마련한 로드맵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행정학과)는 “행안부가 로드맵을 발표한 지 1년 가까이 됐고 독립된 자치분권위원회가 출범했는데도, 내용이 크게 진척된 것이 없다”며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에 어떻게 나눠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기초단체장협의회도 이날 성명을 내어 “계획안 마련이 비공개로 이뤄졌고 공론화 과정도 생략됐다. 기초지방정부는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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