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2일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이 전국재해구호협회를 찾아 제시한 ‘개정 계획안 요약’ 문건 중 일부. 전국재해구호협회 제공
행정안전부가 민간단체인 전국재해구호협회(희망브리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행안부 담당 공무원이 협회 직원들에게 “협회를 없애겠다”는 등의 고압적 발언을 하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업무 지시를 하는 등 이른바 ‘갑질’을 한 정황까지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12일 협회와 행안부 말을 종합하면, 행안부는 지난 7월부터 의연금 배분위원장이 협회 회장을 맡고, 배분위원회 위원 20인 중 과반수인 10인을 정부가 임명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재해구호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앞서 지난 2월에도 행안부는 협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 했으나,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협회는 대한적십자사 등 시민사회단체와 경제단체, 언론사 등 20여개 민간단체로 꾸려진 기구로 국가 재난 상황 때 국민 성금을 모으고 집행하는 일을 한다.
협회는 행안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사실상 민간단체를 정부 산하에 둬 멋대로 운영하고 국민 성금을 세금처럼 쓰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협회는 의연금을 배분하는 배분위원회의 절반을 정부 쪽 사람들을 채워 입맛대로 협회를 좌지우지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라고 주장했다. 재해구호법과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들로부터 직접 의연금·기부금을 모집·접수하는 것은 위법이다. 국민 성금이 세금처럼 쓰이지 못하게 한 조처다.
특히 이 과정에서 행안부가 협회에 ‘갑질’을 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협회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 행안부 사무관은 협회 직원들에게 반말을 하며 “협회를 없애버리겠다”, “감사원에 고발하겠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을 했다. 또한 업무시간 후는 물론 밤 12시가 넘은 시간까지 메신저로 지시를 하는 일도 많았다고 직원들은 전했다. 한 협회 직원은 “행안부의 끊임없는 자료 요구에 대응하느라 구호 사업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행안부는 이날 “소속 공무원의 일부 거친 언행은 사과한다”면서도 “법 개정 추진은 국민 성금이 더 투명하게 운영되게 하려는 것으로, 지도·감독 규정을 신설해 구호협회 업무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사권을 쥐어 협회를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협회쪽의 판단은 다르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해마다 회계감사를 받아 결과를 행안부에 보고하고 있고, 운영비 사용 역시 행안부와 협의해야 가능하도록 돼 있는데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법 개정 없이도 외부 모금 기관이 협회 이사회에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오히려 행안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폭염과 복합재난 피해지원을 위한 제도 개선’ 세미나에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의연금을 정부가 개입해서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굉장히 불순하고 잘못된 것”이라며 “의연금 관리가 정부 손으로 들어가는 순간 세금과 합산돼 의연금까지 세금처럼 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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