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 위치한 전북맹아학교에서 문병현 교무부장이 박소영양이 그린 그림에서 점자들을 설명하고 있다. 박임근 기자
“코끼리를 표현하고자 했으나 도마뱀이 돼 버렸던 작품 앞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주세요.”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전북맹아학교가 9월18~23일간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안 교동미술관에서 제5회 미술전시회 <도마뱀이 된 코끼리>를 연다. 이 전시회는 학생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2014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이번에는 학생 58명이 참여해 회화 20점과 조소 80점을 선보인다.
행사 이름이 <도마뱀이 된 코끼리>가 된 것은 정문수 교장 직무대리의 체험에서 비롯했다. 사물을 한 번도 못 본 전맹 학생에게 찰흙으로 코끼리를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몸통이 길고 다리가 평면에 붙어 있는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때 정 직무대리가 ‘어 도마뱀’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북맹아학교 학생 박소영(왼쪽)양과 이윤호(오른쪽)군이 자신들의 그림을 들고 있다. 박임근 기자
전시회를 여는 이유는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인식을 바꾸고, 시각장애 학생들의 성취감을 높이며, 학생들이 예비사회인으로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또 ‘맹아학교’라는 전문교육기관이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함이다. 가장 시각적이어야 할 예술영역에서 시각적 기능이 가장 약점인 시각장애 학생들이 미술활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들은 전시회 이후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학생들은 전시회 관람객들의 감상평을 담아 엮은 책을 선물받고 그 글을 읽으며 대단한 자긍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첫해인 2014년에 약 20점이 다른 전시회를 위해 전북도립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고, 2015년에는 1천여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저시력인 박소영(17·고2)양은 지금 익히고 있는 점자와 그에 대한 어려움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올 여름방학에 방문한 동남아 타이에서 직접 만져봤던 코끼리를 찰흙으로 빚어 작품을 만들었다. 이 학교 학생 10여명은 지난 8월 3박4일간 타이의 코끼리 동물보호소를 다녀왔다. 장애인의 문화향유를 돕는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이 후원했고, 10월에는 서울에서 함께 전시회도 연다. 박양은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미술을 이론으로만 배웠는데,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니까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이윤호(17·고2)군도 “들어서만 알고 있는 저녁노을을 초록과 빨강 색깔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에 위치한 전북맹아학교의 정문수 교장 직무대리가 한 학생의 작품 <파도>를 들어보이고 있다. 박임근 기자
정 교장 직무대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동등한 대우는 아니더라도 동일한 기회에서 손해를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같은 인식이 확산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전시회를 계속 열 것”이라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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