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한겨레> 자료 사진
‘황제 노역’ 논란의 당사자인 허재호(76)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은닉재산으로 의심되는 70억원이 계열사가 연루된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다. 허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탈세와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및 254억원의 벌금형이 확정됐으나, 2014년 “가진 재산이 없다”며 하루 5억원꼴의 구치소 노역으로 벌금을 탕감받으려고 했다가 공분을 샀다. 경찰은 이 70억원과 허 전 회장 쪽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 재산 숨겨둔 채 황제노역? 26일 <한겨레>가 입수한 광주지법 결정문을 보면, 허 전 회장은 2014년 9월 지에스건설에 대한 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의 채권 70억원을 넘겨받았다. 지에스건설㈜은 허 전 회장의 전 사위가 대표로 있던 대주그룹 계열사로 지에스그룹의 계열사인 지에스건설과는 다른 회사다. 허 전 회장은 이 돈을 2009년 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 목포 성 미카엘 대성당 건립 기부금으로 양도했다가 사정 변경이 생겼다며 재단으로부터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허 전 회장은 천주교재단에서 채권을 넘겨받은 직후 지에스건설을 상대로 70억원을 지급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2014년 11월 법원에서 지급명령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허 전 회장 쪽이 이 70억원을 돌려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기도 용인 공세지구 대주피오레 분양대금 피해자들이 2014년 4월 광주지검에 출두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탄 차를 가로막고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대책위 제공
지에스건설이 70억원을 허 전 회장 쪽에 지급했다면, 그 돈은 처음부터 허 전 회장의 ‘은닉재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에스건설이 2010년 경기도 용인공세지구에 분양한 대주피오레 아파트 분양 피해자들(47명)은 “이 돈이 허 전 회장의 돈이 맞다면 환수조처해 우리가 받지 못한 피해액 140억원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법원에서 “지에스건설은 계약금 등 분양대금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라”는 판결을 받고도 아직까지 이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대책위는 “지에스건설이 법원에 제출한 재산목록(2011년 4월)과 사실조회에 대한 회신서(2011년 6월)상의 채권·채무 내역 어디에도 대여금 70억원이 명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400억원대의 벌금·세금을 체납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지난 2014년 2월 뉴질랜드 한 카지노 브아이피 룸에서 혼자 도박을 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 피해자들 “허 전 회장이 70억원 받아갔는지 확인해달라” 하지만 허 전 회장 쪽 관련자들은 70억원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밝혔다. 허 전 회장의 사위였던 지에스건설 이아무개 전 대표는 “나는 회사 등기에 올라가 있었을 뿐, 70억원 건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허 전 회장에겐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전자우편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진위는 경찰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 황미영 대표는 강제집행 면탈 및 횡령 혐의로 지에스건설 이아무개 전 대표 등 3명을 고소했다. 황 대표는 “서민의 분양대금 140억원을 떼어먹은 허 전 회장이 70억원을 받아갔는지와 그 돈의 출처가 은닉재산이나 비자금인지를 밝혀달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 용인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지에스건설의 자금 흐름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400억원대의 벌금·세금을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출국했던 허 전 회장은 카지노 도박 사실이 알려진 뒤 일당 5억원씩 탕감받는 노역을 살기 위해 입국해 ‘황제 노역’ 논란을 빚었다. 그는 하루 일당 5억원씩 6일동안 30억원을 탕감받고 나머지 벌금 224억원과 국세·지방세 등을 납부한 뒤 2015년 7월 슬그머니 뉴질랜드로 출국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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