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국내 3대 어장으로 번성했던 방어진항의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
울산 동구 방어진은 애초 방어(?魚)가 많이 잡히던 곳이어서 방어진이란 이름이 붙었다. 현재는 한자어가 방어(方魚)진으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까지 방어진은 방어잡이 어항이면서 동남해안 방어의 보루였다. 현재 그 증거로 주전·천내 봉수대와 남목마성(목장)이 남아 았다. 세종 때엔 삼포 개항으로 입구 염포에 왜관이 설치되면서 이곳에는 ‘호상고’(好商賈)라 불린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바다 밖으로 열린 교역의 창이었던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방어진은 국내 3대 어항으로 성장했으나, 일본인들이 쌓아올린 막대한 부의 이면에서 토착민들의 한과 고통은 더해만 갔다. 당시 일본인 나카베 이쿠지로(1866~1946)는 방어진에서 고등어를 잡아 일본의 재벌로 성장했고, 일본인들이 그의 성공담을 기려 방어진에 공적비까지 세웠지만 해방 뒤 주민들이 이를 파괴해 버렸다.
이후 방어진은 해방과 함께 일본인과 일본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지역 경제가 파탄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고래잡이를 통해 침체기를 이겨냈고, 이후 1972년 현대중공업 전신인 현대조선이 들어선 뒤 이곳은 조선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최근 조선해양 산업의 침체로 경제가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지만 울산시와 동구, 기업, 주민 등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 분주한 곳이기도 한다.
울산박물관이 2일부터 내년 2월24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방어진의 역사, 문화적 변천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기획전 ‘방어진, 파도와 바람이 들려주는 삶의 노래‘를 연다. 특별전은 1부 ‘방어?魚, 지키는 것과 나서는 것’, 2부 ‘방어方魚, 빛과 어둠의 양면, 3부 ‘방어진, 날개를 달아’로 편성됐다.
울산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조선해양 산업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민에게 힘을 주고, 방어진을 모르는 방문객에게는 울산 방어진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사진 울산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가혹했던 수군의 역과 관련한 폐단 등의 지역 민원이 기록된 ‘울산민폐소’. 1631년 울산도호부사 박명부가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