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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햇발을 받고…” 38년 전 ‘혼불’ 작가의 편지

등록 2018-10-04 11:19수정 2018-10-04 11:27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보낸 서간문
1980년 신춘문예 당선뒤 인연 맺어
격조높은 한글 사용…한글날 앞두고 울림
김 화가, 남원혼불문학관에 기증
1980년 10월10일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쓴 편지글의 첫부분.
1980년 10월10일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쓴 편지글의 첫부분.
“안녕하시온지요? 사과 냄새가, 시고 향기롭게, 그러나 서글프게 섞여 있는 十月(10월)의 햇발을 받고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여러가지가, 고맙기만 합니다.…”

대하소설 <혼불>의 저자인 고 최명희(1947~1998) 작가가 화가인 김병종(65) 전 서울대 교수에서 보낸 대형 서간문이 발견돼 관심을 끈다. 한지에 쓴 길이 130㎝, 폭 20㎝ 크기의 세로형 이 편지는 꼬박 38년 전인 1980년 10월10일에 대부분 한글로 씌여졌다.

1980년 10월10일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쓴 편지글의 끝부분.
1980년 10월10일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쓴 편지글의 끝부분.
김 화가가 이사를 몇 차례 다니면서 자신의 소장했던 편지묶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8월 서가를 정리하면서 우연히 이 편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한지에다 써서 오랜 시간이 흐른 관계로 일부가 훼손돼 조각낸 한지를 밑에다 덧대는 작업 등을 거쳐 수선했다고 전했다. 김 화가는 최근 이 편지를 남원시에 보내 혼불문학관에 기증했다.

편지 내용은 계절에 대한 얘기와 안부, 그리고 결기가 밴 작가 정신 등이 담겨 있다. 김 화가는 이 편지를 받고 너무 놀랐다고 전했다. 크기도 놀라웠지만, 긴 글에서 오탈자 1개가 없이 또박또박 단아하게 대부분 한글로 써진 문장이 마치 바위에 한글자 한글자를 정성스럽게 새긴 것처럼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한글이 파괴되고 변형되는 세태에서 한글이 이렇게 아름답고 격조있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김 화가는 “편지 문장이 긴 만연체로 중간에 쉼표를 사용했다. 짧은 간결체를 쓰는 지금과 너무 달랐다. 아마 한나절을 썼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1980년 10월10일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쓴 편지글(길이 130㎝, 폭 20㎝)의 전체 모습.
1980년 10월10일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쓴 편지글(길이 130㎝, 폭 20㎝)의 전체 모습.
최 작가와 6년 후배인 김 화가는 1980년 1월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장소에서 처음 서로 만났다. 그해 신춘문예에 최 작가가 단편소설에, 김 화가는 희곡 부문에 당선했다. 김 화가는 당시 그림보다는 연극에 더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혼불문학관이 위치한 전북 남원시 사매면은 김 화가의 고향이자, 최 작가의 외갓집이 있어 최명희 작가가 방학때 자주 방문해 글을 쓰고는 했다.

1980년 10월10일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쓴 편지글의 중간부분.
1980년 10월10일 고 최명희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쓴 편지글의 중간부분.
지난 8월 서울대 동양화과를 퇴직한 김 화가는 “영어가 강조되고 한글이 변방인 지금, 격조있는 한글을 작품에 사용해 온 최 작가의 편지가 문학관에 있으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기증했다”고 말했다. 최명희는 조선 말 남원지역 양반가의 몰락 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키는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대하소설 <혼불>을 17년에 걸쳐 완성해 단재상과 호암상 등을 받았다. 51살이던 1998년 12월 암으로 타계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사진 남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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