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조안면 능내리 일대. 사람이 살기 좋은 ‘수중수변’의 땅으로 손꼽히던 조안면은 팔당호에 문전옥답 70%를 수장당하고 1975년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행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땅이 되었다.
‘금 동이에 넘치는 향기로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금준미주 천인혈 金樽美酒千人血)…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드높다(가성고처 원성고 歌聲高處怨聲高)’. 2010년 수도권 유일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남양주시 조안면의 자전거길에서 만난 60대 농부는 “살 만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시로 답했다.
도시 사람들이 쉽게 쓰고 버리는 수돗물은 상수도보호구역 주민들의 피와 눈물이고, 한 해에 200만명이나 다녀간다는 한강 자전거길은 20여년간 일구던 유기농 단지가 있던 곳이라는 뜻이었다.
200여년 전 <택리지>를 펴낸 이중환은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에워싼 ‘수중수변(水中水邊)’을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고 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조안면이 그런 땅이었다. 뱃길이 발달해 물자가 풍부했고 강의 퇴적토로 이뤄진 농토는 말 그대로 문전옥답이었다. 그러나 옛말이다. 운길산(610m) 너른 자락에 기대고 북한강을 마주한 ‘배산임수’의 땅 조안면 길가에는 ‘쾌적한 한강 조망과 수변생활’을 자랑하는 강 건너 양평군 양서면 아파트 분양광고 현수막과 함께, ‘마을주민 전과자 만드는 악법 철폐하라!’는 규제개혁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나란히 붙어 있다.
양서면과 조안면은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지만 합법과 불법의 간격은 근 100배까지 차이가 나는 땅값만큼이나 크다. 상가가 늘고 아파트가 건설되는 양서면과 달리 약국, 병원, 미용실, 공중목욕탕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상가는 물론이고 그 흔한 치킨집과 짜장면집, 편의점도 조안면에는 없다. 불법이거나 면적에 제한을 받아 사실상 영업을 할 수 없는 탓이다. 조안면 사람들은 친구들과 식사 한 끼를 하려고 해도 양수리나 와부읍으로 나가야 한다.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은 물론이고 개인 주택 신축조차도 까다롭다. “개발제한구역이 일부 풀리고 아들도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집을 늘리려 했어요. 그런데 수도법 때문에 안 된대요.”
주택신축은 100㎡ 이상은 안 되고 개축조건도 까다롭다. 그나마도 원거주민이거나 6개월 이상 거주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지목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대지를 찾기도 쉽지 않아 대부분 포기하기 일쑤다.
60대 농부 역시 주택개축은 포기했고 아들은 덕소 아파트에 신혼집을 마련해야 했다. 아들은 진중리 밭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매일 출퇴근한다. 조안면 사람들에게 강 건너 양수리에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뿐만 아니라 밤을 밝히는 상가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다.
정약용 유적지와 수종사, ‘물의 정원’과 북한강 자전거길 등과 북한강의 수려한 경관은 한 해에도 수백만명의 관광객을 조안면으로 불러들인다. 관광객 상대로 음식만 팔아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겠다 싶지만, 조안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할 수 없는 일
음식점 허가는 마을 단위로 전체 가구의 5~10%로 제한되고 면적도 100㎡를 넘을 수 없다. 포장마차나 노점까지도 불법인 데다 벌금까지 어마어마하다 보니 자전거길마다 있기 마련인 국숫집은 물론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장려하는 푸드트럭조차 찾을 수 없다. 강 건너 양수리에는 유흥주점까지 허가가 난다.
유기농업으로 소문이 나 유치원과 아파트부녀회 등은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이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수확체험이 고작이다. 체험장을 따로 지을 수도 없어 비닐하우스 한쪽을 비워 딸기잼을 만들게 하는 게 전부이다 보니 정부가 강조하는 6차 산업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공장을 지을 수 없는 조안면에서는 농부가 자신이 수확한 농산물을 가공하는 일은 불법이다.
조안면 거의 전 지역은 개발제한구역·팔당호특별대책지역·상수도보호구역·수변구역·공장설립제한지역 등 7가지 이상의 규제로 행위 제한을 받는다. 규제면적을 다 더하면 조안면 전체면적의 약 5배에 이른다. 양서면이나 조안면이나 한강으로 생활하수를 흘려보내는 건 똑같은데 왜 양수리에서 되는 일이 조안면에서는 불법인지 주민들은 답답할 뿐이다.
조안면에서는 세차도 불가능하다. 집 앞에 주차장조차 만들 수 없다. 가축도 방목할 수 없다. 현행법상 반려견은 가축이니 개를 데리고 산책하다가는 불법으로 단속될 수 있는 곳이 조안면이다.
규제가 많고 엄격하게 적용되다 보니 조안면민은 대다수가 벌금 한번쯤 내본 전과자다. 농산물 저장 저온창고에 집에서 먹는 김치를 보관했다가 거액을 들여 지은 창고를 헐어야 했다거나, 손님들 편의를 위해 화장실을 지었다가 3000만원이나 되는 벌금을 내야 했다는이야기는 조안면에서는 흔한 일이다. 북한강 자전거길을 이용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음료수 한 병, 국수 한 그릇 먹을 곳이 없다고 불편을 호소해도 규제는 철옹성이다.
조안면 규제 현황
이중환은 ‘살 만한 땅은 사람이 만든다’고 했다. 팔당호에 문전옥답의 70%를 내준 조안면 사람들은 북한강변에 하천부지를 수십년 동안 일궈 유기농업의 씨를 뿌렸다. 2007년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직접 경운기로 퇴비를 나르며 조안면을 세계적인 유기농 메카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탈리아와 독일까지 오가며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를 유치했다. 그러나 대회가 열리기도 전인 2010년 유기농단지는 4대강 사업으로 훼손됐다. 도농상생과 환경과 지역경제의 공존을 실험했던 그 자리에는 물의 정원으로 이름 붙은 수변공원과 북한강 자전거길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유기농민들은 2600만 수도권 시민의 젖줄인 한강 물을 발암물질 퇴비로 오염시킨다는 오명과 나라땅에 농사를 지었으면서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투쟁하는 파렴치한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당시 팔당호 수질은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기준으로
전년 1.7PPM보다 0.7 낮은 1.0PPM이었다. 유기농 단지 대신 들어선 물의 정원은 이후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 등 외래 유해식물을 막기 위해 개양귀비를 심고 멕시코가 원산인 노란 코스모스를 키운다.
2008년 운길산역이, 2012년 물의 정원과 북한강 자전거길이 열리면서 관광객은 급증했다. 불법으로 폐쇄된 아버지의 막국수 가게 앞마당에서 카드빚이라도 갚겠다며 핫도그와 수제 소시지를 파는 노점을 열었던 26살 황승우씨는 불법으로 또 고소됐다. 그는 검찰수사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을 탓하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황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2016 년의 일이다.
조안면 사람들에게 듣는다(기사보기)
2017년 초까지 계속된 단속으로 남양주시에서만 165건의 단속이 이뤄졌다. 이중 절반가량이 조안면 업체들이다. 수십년 동안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세금과 벌금을 납부하며 장사를 해 오던 이들은 음식점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한강물을 더럽히는 상습범’이란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수백만원에서 3000만원의 벌금과 그보다 더 큰 이행강제금은 어쩌면 자식 대까지 갚아야 할 빚이다. 당시 이례적으로 13명이나 구속되자 벌금을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구속해달라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는 남양주시 음식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도 있고 현직 시의원도 있었다. 황씨의 아버지도 그 과정에서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과도한 규제가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심하게 훼손한다고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항의해오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구속된 어머니가 여전히 교도소에 갇혀 있는 김기준(35)씨는 최소한 “물을 더럽히며 돈벌이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라도 풀어달라고 하소연한다.
수도권 최초의 슬로시티라는 영광은 ‘조안애(愛)’라는 지역 브랜드와 함께 희미해지고 있지만 조안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살 만한 땅 조안’을 희망 삼아 현재를 일구고 있다. 2016년 남양주시는 ‘NEXT 경기창조 오디션’에서 슬로라이프 미식관광 플랫폼 조성 사업으로 대상을 받아 70억원의 사업비를 마련했다. 조안면 일대에 ‘생태환경을 보존하고 농업과 지역자원을 융∙복합해 농촌경제 및 농가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다. 미식관광 플랫폼 사업 계획대로 유기농가공센터와 굿푸드 레스토랑 등을 실현하려면 음식점과 제조업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상수원관리규칙을 고쳐야 한다.
민주당 최초로 남양주 시장에 당선된 조광한 시장은 당선인 신분 때부터 조안면을 찾아 주민들의 아픔을 들었다. 하수처리장 고도화를 위해 80억원의 예산도 추경에 반영했다. 이 예산으로 조안면의 7개 하수처리장 가운데 3곳의 하수처리장에 고도화 시설을 마치면 음식점 허가 건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고도화를 마친 진중리 푸른물센터는 팔당 수질보다 맑은 BOD 기준 0.3PPM의 물을 방류한다.
앞선 기술 도입하니 맑은 물이 콸콸(기사보기)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콘텐츠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