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의 저유탱크에 설치된 유증환기구 뒷모습. 나사가 풀려 틈이 벌어져 있다. 경기북부경찰청 제공
지난 7일 발생한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가 2014년 저유탱크 유증환기구의 화염방지기가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고도 이를 개선하지 않고 묵살했던 것으로 경찰 수사결과 밝혀졌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18일 저유소 화재 사건 중간 수사결과 보도자료를 내어, 저유탱크의 유증환기구 10개 가운데 9개에는 화염방지기가 설치되지 않았고 1개에만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화염방지기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인화성 액체나 기체를 방출하는 시설에 설치해야 할 의무가 규정된 화재 예방장치다.
또 유증환기구에 설치된 인화방지망도 망이 찢어지거나 틈이 벌어지고, 나사가 풀려 있는 등 부실하게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탱크 주변의 안전관리도 부실해 불이 붙을 수 있는 가연성 물질을 제거해야 함에도 풀을 깎은 뒤 그대로 둬 건초 더미를 방치한 사실도 확인됐다.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옥외탱크 주변에 불이 붙을 수 있는 건초 더미가 수북히 쌓여있다. 경기북부경찰청 제공
경찰은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의 근무 시스템도 부실한 안전관리의 원인이 된것으로 파악했다. 사고가 난 지난 7일은 휴일로, 당일 근무자는 총 4명이며 그 중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된 통제실에서 근무한 인원은 1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해당 근무자는 당시 유류 입출하 등 다른 업무를 주로 하고 있어, 비상상황 통제 인력은 사실상 전무했던 셈이었다.
또 통제실에 설치된 시시티브이 중 화재 등 감시용은 25개인데, 화면이 작아 잔디에 붙은 화재 자체를 인지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탱크 내부에서 이상이 생길때 경보음이 울리게 돼 있어, 사실상 대형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의 감시 시스템은 없었다.
폭발 화재는 지난 7일 오전 10시56분께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옥외탱크 14기 중 하나인 휘발유 탱크에서 발생했다. 저유소 뒤편 터널 공사 현장에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날린 풍등이 휘발유 탱크옆 잔디에 떨어지면서 잔디에 불이 붙었고, 이 불이 저유소 폭발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석유 260만 리터가 불타 43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화재 진화에만 17시간이 소요됐다.
경찰은 앞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관계자 등 5명을 불러 사실관계를 조사했으며, 시설과 안전 관련 자료 27건을 확보해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한송유관공사의 부실관리 혐의에 대해 전문가 자문단의 자문을 거쳐 자료를 분석하는 등 철저히 수사하겠다. 풍등을 날린 외국인노동자의 혐의에 대해서는 위험발생 예견 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 법리오해나 인권침해 의혹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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