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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쪽지문 살인 사건’ 다시 미궁 속으로

등록 2018-10-24 17:35수정 2018-10-25 10:58

범행 현장 테이프에 남은 지문으로
강릉 노파 강도살인 혐의 받은 50대
“범행 현장 간 적 없어” 강력 부인
항소심 “쪽지만으로 유죄 어려워”
검찰, 판결문 검토 후 상고 여부 결정
2005년 ‘강릉 노인 살인사건’의 단서로 꼽히던 용의자의 쪽지문. 연합뉴스
2005년 ‘강릉 노인 살인사건’의 단서로 꼽히던 용의자의 쪽지문. 연합뉴스
2005년 5월13일 정오께 강원 강릉시 구정면에 사는 ㄱ(여·당시 69살)씨가 손과 발이 묶여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숨진 ㄱ씨의 얼굴에는 포장용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었고, 손과 발은 전화선 등으로 묶인 상태였다. 안방 서랍이 모두 열려 있었고, 금반지 등 78만원 상당의 귀금속도 없어졌다. 부검 결과, 기도 폐쇄와 갈비뼈 골절 등이 사망 원인이었다.

경찰은 범인이 포장용 테이프로 얼굴을 감아 숨을 쉬지 못하게 한 뒤 저항하는 ㄱ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지만, 초동 수사 실패로 장기 미제로 남았다. 강원도 대표 미제 사건 가운데 하나인 ‘강릉 노인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12년이 지난 지난해 9월 경찰이 유력 용의자로 ㄴ(51·당시 38살)씨를 체포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경찰이 ㄴ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할 수 있었던 것은 포장용 테이프에 남아 있던 ‘1㎝ 쪽지문’ 덕분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2005년 당시 경찰은 ㄱ씨 얼굴을 감는 데 범인이 사용한 포장용 테이프에서 길이 1㎝ 남짓한 쪽지문을 발견했다. 그러나 융선(지문을 이루는 곡선)이 뚜렷하지 않아, 당시 지문감식 기술로는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문감식 기술이 발달하면서 쪽지문의 주인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찰의 끈질긴 추가 수사 덕에 해결되는 듯 했던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 재판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ㄴ씨가 무죄로 석방된 것이다. 당시 참여재판 배심원 9명 중 8명이 ㄴ씨가 무죄라고 판단했다. 유죄로 판단한 배심원은 단 1명이었다.

춘천지방법원 누리집 갈무리
춘천지방법원 누리집 갈무리
ㄴ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건 당시 범행 현장에 간 적도 없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포장용 테이프에 자신의 쪽지문이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낚시도구 등을 수리할 때 사용한 포장용 테이프를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 사물함에 보관했는데 오토바이를 도난당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범행 현장에 있던 포장용 테이프에 찍힌 쪽지문 탓에 피고를 가해자로 의심했다. 그러나 이 쪽지문이 노파의 얼굴을 테이프로 감아 제압하는 범행 과정에서 찍힌 것인지, 범행과 무관한 다른 이유로 남겨진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봤다.

24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김복형)도 원심과 같이 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쪽지문 만으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 증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셈이다. 재판부는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피고인의 쪽지문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 원심의 판단은 적법하고,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고 밝혔다.

무죄 선고 직후 법정을 나선 ㄴ씨는 “죄가 없으니까 무죄 판결이 난 거 아니겠나. 나는 모르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이 과학수사를 해서 쪽지문이 용의자의 것이라고 밝혀냈는데 무죄라니 믿을 수 없다. 부모의 한을 풀어주지 못해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이 사건은 1㎝짜리 쪽지문으로 장기 미해결 사건의 용의자를 찾아내 ‘과학수사의 쾌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심에 이어 항소심서도 무죄가 선고돼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됐다. 검찰은 항소심 판결문을 검토한 뒤 조만간 상고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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