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능력검정시험 대리응시 브로커와 의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로 나눈 대화. 부산경찰청 제공
합성사진을 붙인 위조 신분증으로 영어능력검정시험을 대신 치른 일당과 의뢰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이런 혐의(업무방해 등)로 브로커 ㄱ(35)씨 등 2명을 구속하고, ㄴ(23)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또 이들에게 돈을 주고 대리시험을 의뢰한 법무부 산하 공무원, 대학원생, 취업준비생 등 30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태국에 있는 문서 위조 브로커를 수배했다.
ㄱ씨 등은 한 명당 300만~500만원을 받고 의뢰자들의 합성사진으로 신분증을 재발급받거나 가짜 신분증을 사들인 뒤 토익 등 영어능력검정시험을 대신 치르는 방법으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를 보면, ㄱ씨 등은 인터넷 등에서 “토익, 텝스 등 어학시험 대신 봐 드립니다. 필요 점수 맞춰드리고 비밀 보장합니다”라는 내용의 광고 글을 냈다. 의뢰를 받은 이들은 얼굴 합성 애플리케이션으로 의뢰인과 대리시험자 사진을 합성해 신분증을 위조했다. 한 대학원생은 태국에서 정교한 가짜 신분증을 의뢰했다가 인천공항 세관 검색에 걸려 대리시험 의뢰를 포기하기도 했다.
이른바 대리시험 ‘선수’들은 영어능력검정시험을 가짜 신분증으로 감독관의 의심을 피해 대리시험을 치렀다. 이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학했으며, 의뢰인들이 원하는 점수를 맞춰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이들은 대리시험으로 받은 돈을 빚을 갚거나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대리시험 의뢰자들은 승진이나 취업을 위해 영어 시험 성적이 필요한 회사원, 취업준비생, 대학원생 등이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대리시험을 통해 받은 높은 점수의 영어성적을 낸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과 법무부 산하 기관 공무원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대리시험 문제로 일부 운전면허시험장에 합성사진 감별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전체적으로 활용도가 낮은 편이다. 가짜 신분증은 다른 범죄에 악용 가능성이 있어 관계기관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개발한 얼굴식별 프로그램 전면 도입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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