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에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벽화가 설치됐다.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이 벽화는 댐 벽면 중앙이 뚫려 있어 하천의 물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1986년 10월30일, 이규호 당시 건설부 장관은 ‘대북한 성명’을 발표한다. 그는 담화에서 “북한이 강원도 이북 상류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건설 중인 금강산 발전소는 댐 높이가 200m, 수위 350m 이상으로 최대 저수능력이 소양강댐 7배인 200억톤에 달한다”며 “이 댐이 붕괴될 경우 서울과 수도권이 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언론들은 앞다퉈, 63빌딩의 중간층까지 물이 차올라 서울이 수장될 수 있다는 기사를 써냈다. 전두환 독재에 항의하는 국민적 열망이 표출되던 시기에 이런 발표는 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다. 이에 전두환 정권은 북한의 수공을 방어하기 위해 댐 건설이 필요하다며 ‘국민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돈을 걷어, 이듬해인 1987년 ‘평화의 댐’ 공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이 사안은 김영삼 정부 시절, 실체가 드러난다. 1993년 감사원 조사에서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무마하기 위해 북한의 수공 위협과 피해 예측을 크게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평화의 댐은 홍수조절 기능이 있다고 판단돼 2002년 2단계 공사를 들어간 뒤 2005년 완공됐다. 1단계 공사가 시작된 1987년부터 완공 때까지 18년 동안 모두 3995억원이 투입됐다.
‘대국민 사기극’으로 탄생한 평화의 댐이 세계 최대 규모의 ‘트릭 아트’(착시 미술)로 다시 태어났다.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벌인 ‘트릭’(속임수)이 ‘트릭 아트’로 재탄생한 셈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14일 강원도 화천에서 ‘평화의 댐 치수능력 증대사업 준공 기념행사’를 열었다. 2012년부터 1385억원을 투입해 6년 만에 끝난 평화의 댐 치수능력 증대 사업은 기상 이변에 따른 댐 안정성 강화를 위해 댐 하류 사면을 콘크리트로 보강했다.
수공은 이번 공사를 하면서 관광객들을 위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마련했다. 특히 댐 바깥쪽 벽면에 새겨진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트릭 아트’ 벽화가 눈길을 끈다. 이 벽화는 높이 93m 폭 60m 규모로 기네스 세계기록(4775.7㎡)에 등재됐을 정도다. 기존에 세계 최대였던 중국 난징의 ‘트릭 아트’ 작품보다 2배 가까이 크다. 화가 등 20명의 전문가들이 3개월 동안 그렸다.
이 ‘트릭 아트’ 벽화는 댐 중앙이 뚫려 있어 하천의 물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또 댐은 성벽의 문처럼 보이고, 그림 속에 수달, 백조, 비둘기 등 평화와 환경을 상징하는 그림도 숨어있다. 수공은 “댐 중앙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린 그림은 실제 댐 상류 700m에 있는 민간인통제구역의 풍경을 그대로 가져와 표현한 것이다. 물이 통하면서 평화로 가는 길도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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