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부산경남본부가 지난 7월 제작한 ‘길통이 차로차로와 함께하는 미납통행료 홍보여행'에 나오는 만화.
“미납 통행료 있다고 연락와부러당께.” “뭐라카노. 통행료 제 때 안 내면 어찌되는 줄 아나? 니 와그리 무식하노?”
‘길통이’가 고속도로 통행료 미납 사실을 실토하자, ‘차로차로’가 한심하다는 듯 호통친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통행료 납부를 독려하기 위해 배포한 만화홍보물의 한 장면이다. 친근감을 주려는 의도인 듯 두 캐릭터는 사투리를 사용한다. 문제는 통행료를 내지 않은 길통이가 호남 사투리를 사용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차로차로는 영남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자신을 꾸짖는 차로차로에게 길통이가 “아따 너무해부린다이~”라고 하소연하자, 차로차로는 “통행료 퍼뜩 내이소!”라고 거듭 질책한다.
이 홍보물은 한국도로공사 부산경남본부가 지난 7월 에이3(A3) 크기로 제작한 ‘길통이 차로차로와 함께하는 미납통행료 홍보여행’이다. 100만원을 들여 접이식으로 300부를 만들었다. 도로공사 부산경남본부 쪽 말을 종합하면, 이 홍보물은 경북·부산·경남지역을 지나는 4개 고속도로의 휴게실 25곳과 영업소 67곳에 부착·비치됐다. 2013년~2017년 통행료 미납이 5835만4천건에 1386억5100만원에 달해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취한 조처라고 한다.
하지만 이 홍보물을 본 고속도로 이용자들이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부적절한 홍보물’이라는 비판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1일 남해고속도로 경남 사천휴게소에서 이 홍보물을 본 김아무개씨는 “통행료를 미납하는 호남 사람, 이를 훈계하고 인도하는 영남 사람… 꼭 공기업이 이래야할까?”라고 도로공사의 행태를 비판한 내용의 글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 박해광 전남대 교수(사회학)는 “호남 사투리를 호남 사람들을 비하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던 언어 습관과 고정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사례”라며 “공기업이 특정지역을 구별짓게 하는 홍보물을 만든 것은 국민정서를 배려하지 않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도로공사 부산경남본부는 논란이 커지자 이 홍보물을 모두 회수했다. 부산경남본부 관계자는 “통행료를 미납하면 고객들이 더 큰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재미있게 알리려고 만화로 표현한 홍보물을 제작했다. 특정지역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오해를 하는 분들이 많아 25일부터 오늘까지 남아있던 홍보물을 모두 회수했다”고 해명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한국도로공사 부산경남본부에서 제작한 미납 통행료 홍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