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됐던 양금덕 할머니(89).<한겨레> 자료사진
“여지껏 기다렸응께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겄어.”
일제강점기 때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됐던 양금덕(89) 할머니는 28일 “몇 년을 기다렸는데 내일 재판에 가야지”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29일 오전 10시 서울 대법원 1호 법정에서 양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판결을 내린다. 최근 병원에 입원한 양 할머니는 “몸이 잘 말을 안 들어, 이제. 그래도 주사 맞고 가봐야제”라고 했다.
양 할머니 등 피해자 5명은 일제강점기 때인 1944년 5월 일본인 교장의 회유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동원돼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중노동을 했다. 이들은 2012년 10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이 재판은 2015년 7월 미쓰비시 쪽이 상고한 뒤 3년이 넘은 지난달 10일에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재판 고의 지연 의혹을 사고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44~45년 10대 초·중반의 소녀들이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시민모임 제공
양 할머니가 일본에서 진행된 첫 소송에 참여한 것은 1992년이다. 양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8명 중 1명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참여해 1994년 3월부터 법적 싸움에 나섰으나 결국 패소했다. 양 할머니 등 8명은 1999년 3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를 기각했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 모든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게 이유였다.
근로정신대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대법원 재판 참관 상경단을 모집해 재판정에 동행하기로 했다. 시민모임은 29일 광주에서 소형버스 1대를 빌려 양 할머니와 시민 20여 명 등과 함께 서울로 간다. 또 다른 소송 당사자 김성주(8·9·경기도 안양시) 할머니도 지병을 앓고 있지만 직접 재판을 지켜볼 생각이다. 하지만 박해옥(88)·이동련(88) 할머니와 피해자 가족인 김중곤(93)씨는 지병으로 재판에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국언 시민모임 대표는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소송을 했던 어르신들이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건강 때문에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때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자는 호남(138명)·충청(150명) 지역의 13~15살 소녀 288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6명은 1944년 12월 대지진 때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 중 상당수는 정신대라는 명칭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로 오해받아 이혼하는 등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외에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건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