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주택재개발정비예정구역 지정이 해제된 서울 성북구 성북4구역 안 폐허가 된 빈집들. 채윤태 기자
위태로운 마을은 적막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40여채의 집들은 외벽이 무너지거나 곳곳이 부서진 상태였다. 사람 떠난 집 안에는 버리고 간 그릇과 옷가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수도 요금 등 공과금 고지서가 대문 밖에 수개월째 그대로 붙어 있는 집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산25-102번지 일대의 고급 주택과 빌라촌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부서지고 깨진 낡은 주택 밀집 단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2004년 주택재개발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가 2015년 해제된 성북4구역(1만8585㎡)이다.
“집값이 형편없이 내려서 집을 팔 수가 없어.” 주민 이아무개(67)씨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이곳은 43채 가운데 현재 3채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일부 주민은 상하수도가 끊겨 공동 화장실과 공동 수도시설에 기대 하루를 나고 있었다.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2004년 이 일대가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시세 차익을 노리고 5000만~2억원까지 웃돈을 주고 집을 산 이가 많다”며 “2015년 재개발이 무산되면서 집을 팔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집주인들이 집을 비워두다 보니 빈집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여름 박원순 서울시장이 옥탑방 체험을 한 강북구 삼양동도 대표적 빈집 밀집지역의 하나다.
2015년 1월 주택재개발정비예정구역 지정이 해제된 서울 성북구 성북4구역 안 폐허가 된 빈집들. 채윤태 기자
인천과 경기도 원도심에서도 주인이 버리고 떠난 빈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천 부평구 부평동 760-272번지 일대의 옛 ‘미쓰비시 줄사택’이 대표적이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1938년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조선인 노동자의 합숙소로 지었다. 작은 집 수십채가 나란히 줄지어 있어 ‘줄사택’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현재 60여채의 집 가운데 10여채를 빼곤 비어 있다. 부평2재개발구역(5만9954㎡)에도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빈집이 수두룩하다. 주민이 떠난 자리에는 무속인이 하나둘씩 터를 잡으면서 네다섯 집 건너 한 집꼴로 빨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경기도에서 가장 빈집이 많은 곳은 평택이다. 이곳의 빈집은 대체로 사람이 살지 않는 미분양 주택이다. 10월 말 기준으로 평택 미분양 주택은 2만2741채에 이른다. 입주가 시작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불 꺼진 빈집이 많다. 평택의 빈집은 미군기지 평택 이전, 고덕산업단지 안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신설 등 부동산 개발 호재에 따라 아파트가 과도하게 공급되면서 생겼다. 평택시는 이런 아파트 외에도 폐가 등 빈집이 1100여채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평택시는 “도심인 동삭동과 소사동, 고덕산업단지 배후단지 등은 재개발·재건축이 지연되면서 공가 발생 비율이 높은 반면, 농촌 지역은 외지인이 매입한 뒤 관리하지 않아 빈집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2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빈집 현황을 보면, 1995년 36만5446채에 불과하던 빈집이 2015년 106만8919채로 100만채를 넘어선 뒤, 지난해 126만4707채로 22년 만에 3.5배가량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주택의 7.4% 수준으로, 주택 100채 가운데 7채가 빈집인 셈이다. 특히, 통계청이 집계하는 ‘빈집’은 거주 또는 사용 여부를 확인한 날로부터 1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주택(미분양 포함)을 말한다. 집의 기능을 잃은 폐가는 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이런 집들까지 고려하면 전국적으로 빈집 수는 더욱 많아진다.
빈집이 가장 많은 곳은 수도권이다.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의 빈집은 전국 빈집의 27.3%인 34만6천여채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19만4981채로 가장 많았고, 서울 9만3343채, 인천 5만7489채 차례였다. 인천은 2015년보다 빈집이 115%(3만784채)나 늘어 전국에서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집 없는 가구가 절반이 넘는 서울에서도 10만채 가까운 집이 비어 있는 것이다. 수도권 밖에서는 경북 지역의 빈집이 12만6480채로 가장 많았고, 경남 12만548채, 전남 10만9799채, 부산 9만4737채 차례였다. 지방에선 지역 경제 기반이 약화하면서 인구 유출이 유입보다 많은데다, 혼자 살던 고령자들이 사망하면서 빈집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빈집 증가의 다른 원인으로는 재개발, 재건축구역 해제나 사업 부진뿐 아니라, 주택 과잉 공급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김갑성 연세대 교수(도시공학과)는 “전국적으로 원도심을 두고 도시 외곽에 새도시를 만들어 아파트를 과도하게 공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도심의 주거가 노후화, 공동화하고 결국 슬럼화로 이어진다. 원도심과 새도시 사이에서 수요와 공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노동자 합숙소였던 ‘미쓰비시 줄사택’. 현재 남은 60여채 가운데 50여채가 비어 있는 상태다. 이정하 기자
고령 인구가 많아 ‘인구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경남발전연구원이 지난달 공개한 ‘경남도 빈집 실태와 대응방안’을 보면, 경남 사천시 금곡마을의 공·폐가 비율이 22%에 이르는 등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서부 경남권 농어촌을 중심으로 빈집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주와 창원 등 도시 지역의 원도심도 가구 수 대비 빈집 비율이 10%를 넘었다. 경남발전연구원은 “농어촌을 중심으로 향후 빈집 발생이 급속하게 증가할 우려가 크다”며 “지역 실정에 맞게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단체 등 중간 지원 조직을 두고 관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도시의 성장과 쇠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빈집이 생기지만, 이를 방치하면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빈집은행을 운영하는 최환(35) 대표는 “빈집이 늘어나면 붕괴 위험이나 자연재해에 따른 2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며 “빈집에 따른 주거 환경 악화는 도시 슬럼화와 공동체 와해를 불러온다”고 경고했다. 범죄 노출 위험도 커진다. 올해 2월 ‘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 사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서 발생했다.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노동자 합숙소였던 ‘미쓰비시 줄사택’. 현재 남은 60여채 가운데 50여채가 비어 있는 상태다. 이정하 기자
전문가들은 지역별 여건에 맞는 빈집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개발)는 “한때 ‘자동차 산업의 메카’라 불린 미국 디트로이트는 산업 붕괴 뒤 빈집들을 허물고 도시농업을 하고 있다. 인구와 경제 구조 변화를 고려해 맞춤형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현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급격한 노령화로 빈집이 800만채(전체 주택의 15%)를 넘은 일본에선 빈집을 관리 안 하면 소유주에게 벌금을 물린다”며 “지방정부에서 빈집을 임대주택, 도시농장, 창업센터, 커뮤니티센터 등 다양한 용도로 재활용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하 채윤태 기자
jungha9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