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서울 영등포구 양평유수지 아래 제물포 터널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 제물포 터널 공사(제물포길 지하화)가 진행 중인 영등포구 일대 주민들은 지난 9월 서울시에 공사에 따른 안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천~여의도 구간의 상습 교통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가 양천구 신월 나들목에서 영등포구 여의대로 지하에 왕복 4차로 터널을 뚫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지하수가 새어 나와 인근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주민들은 “폭우가 내리거나 공사 중 외부 압력이 커지면 땅이 내려앉는 싱크홀이 생길까 불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6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해당 공사 과정에서 소음과 진동이 계속되자 공사장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영등포구와 구로구 주민들은 ‘제물포 서부간선지하도로 환기구백지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주민들은 지하 터널 공사의 발파, 먼지 관리에 대해 구체적인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시에 항의했다. 당시 주민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도시의 지하공간까지 개발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서울시의 지하도로 확충에 반발했다.
영동대로를 지하화해 기차역과 상업시설, 주차장으로 만들고 지상을 잔디밭으로 만드는 영동대로 개발 계획의 지하공간 예상도. 서울시
지상에서는 더는 개발이 어려울 정도로 도심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서울시가 도심 곳곳에서 지하공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에도 대규모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지하공간은 사고 발생 때 대규모 피해가 우려되고, 시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련 사업들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동안 꾸준히 ‘대규모 토건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만큼, 박 시장 스스로가 비판하던 전임 시장들의 토건사업을 지상이 아닌 지하에서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3일 서울시의 ‘2019년도 예산안’을 보면, 지하공간 개발과 관련한 시 사업은 총 11건이다. 이 가운데 3건은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는 내년 전체 예산 35조8천억원 가운데 약 0.5%인 1860억6900만원을 지하공간 개발 사업에 편성했다. 시는 제물포 터널 공사를 비롯해 영등포구 양평동 성산대교 남단과 금천구 독산동 금천 나들목을 잇는 서부간선도로 지하화와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9호선 봉은사역 사이 지하공간을 개발하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등에 내년 총 1379억2700만원을 쓸 예정이다.
반면, 서울시는 현재 진행 중인 공사에만 대규모 예산을 편성했을 뿐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안전 사업에는 50억9500만원을 편성하는 데 그쳤다. 도로함몰 예방사업, 도로 동공 탐사를 포함한 도로포장 품질향상 사업, 굴착공사 지하수 보전 및 안전관리방안 수립 등 지하 공사로 인한 지상 안전 관련 사업은 내년 지하 개발 전체 예산의 2.82% 수준이다. 조준희 녹색당 서울시당 정책팀장은 “굴착공사 지하수 보전 등 안전관리방안은 이미 현재 진행 중인 공사가 착공되기 전에 시행해야 하는 방안이지만 내년에 뒤늦게 하겠다고 예산을 편성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이미 진행 중인 지하공간을 개발하는 것 외에도 추가로 지하공간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광화문 일대 지하화 사업, 지하철 2호선 지상구간 지하화 등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서울 입체복합도시 구축 마스터플랜’을 추진하기로 하고 연구 용역을 계획하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지상구간 지하화는 현재 지상구간인 신도림역~신림역 구간, 한양대역~잠실역 구간 등 18.9㎞를 지하화하는 사업인데, 사업성이 높지 않아 지연되고 있다. 시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와 지하철이 지나는 광화문 일대를 지하도 광화문복합역사로 개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영동대로를 지하화해 기차역과 상업시설, 주차장으로 만들고 지상을 잔디밭으로 만드는 영동대로 개발 계획의 지상 공간을 하늘에서 본 모습. 서울시
시민사회단체는 이런 지하 개발 사업에 대해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상희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미 알려진 기존의 지하화 사업 외에 서울시가 추가로 지하공간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실이 이번 예산안을 통해 드러났다”며 “지하공간은 한번 개발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사업 타당성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녹색당 서울시당, 서울환경운동연합 등으로 꾸려진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는 이날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서소문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9년 예산에 대한 의견서를 시의회에 전달했다.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는 “민선 7기 서울시정은 7년 전 오세훈 시장의 토목 예산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며 “시민들의 살림살이가 아닌 토건 예산 중심”이라고 비판했다.
김미향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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