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 참여한 김순옥 할머니 생전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위안부 피해자’ 김순옥(96)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26명으로 줄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은 “김 할머니가 5일 오전 9시5분께 서울 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셨다”고 5일 밝혔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김순옥 할머니는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8살이던 1940년 공장에 취직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향했는데, 이후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위안소로 끌려가 치욕적인 삶을 견뎌야만 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 뒤, 생계를 위해 중국인과 결혼해 중국 둥잉(동녕)에 정착했다.
고국을 그리던 할머니는 2005년 여성부(현재 여성가족부), 한국정신대연구소, 나눔의 집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왔다.
국적을 회복한 김 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물론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증언을 하는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회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2013년에는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민사조정을 신청하기도 했으며, 소녀상에 이른바 ‘말뚝 테러’를 저지른 스즈키 노부유키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비하한 일본 록밴드 사쿠라 란부류(벚꽃 난무류), 책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고소하는 등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10월 나눔의 집에 방문해 할머니를 직접 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별세 소식을 접하게 돼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며 이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진 장관은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피해자 한 분 한 분 더욱 성심껏 보살필 것이다. 모든 피해자분의 상처치유와 명예·존엄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김 할머니의 장례비용을 지원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64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은 김 할머니를 기리는 묵념을 진행했으며, 그의 영정 앞에 꽃을 바쳤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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