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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지명 ‘전라도’ 대신 ‘호남’ 선호하는 연원 흥미롭죠”

등록 2018-12-25 20:12수정 2018-12-25 21:09

‘전라도의 탄생-생활의 터전’ 펴낸 김덕진 교수
고려때 1018년 지명…‘호남’은 13세기 ‘시’에 등장
귀화인마을 향화촌·철제갑옷·여순사건 금지곡…
김덕진 광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김덕진 광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 터전 위에서 생활해왔는가를 행정구역의 위계에 따라 크게 도·군현, 면리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최근 <전라도의 탄생1-생활의 터전>(도서출판 선인)을 펴낸 김덕진(58) 광주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는 20일 “각 자치단체별로 편찬한 지역사를 넘어 전라도역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전라도의 등장 이후 지방제도 개편 과정에서 전라도의 위상이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도의 행정을 총괄한 전주감영과 육군 지휘를 총괄한 강진병영, 세계 최초의 특수선 ‘거북선’을 건조한 좌수영 등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또 전라도 군현의 정비과정, 면과 마을에 대한 변천사도 들어 있다.

전남대에서 학·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받고 내내 ‘전라도’를 연구해온 김 교수는 “이제는 ‘전라도 통사’ 편찬을 서둘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라도의 별호인 ‘호남’의 연원을 추적한 내용이 흥미롭다. 전라도는 고려 때인 1018년 탄생했다. 호남이란 말은 고려 중기 13세기 강진 만덕산 백련사를 이끌던 승려 ‘천인’이 지은 시에 처음 등장했지만, 고려말~조선초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공식 지명인 전라도는 행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호남이라는 별호는 토속적이고 지역적인 색채가 더 강했다”고 말했다. 전라도 사람들은 감정이나 문화를 말할 때 호남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사용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관리 임명장 등 문서엔 전라도라고 적혀 있지만, 세금 징수·군인 징발 등엔 호남이라는 명칭을 선호했다. 임진왜란과 구한말 항일의병을 일으킬 때 의병장들도 ‘호남’을 더 많이 썼다.

김덕진 교수가 쓴 <전라도의 탄생1-생활의 터전>의 표지.
김덕진 교수가 쓴 <전라도의 탄생1-생활의 터전>의 표지.
“전라도는 바다를 통해 중·일과 교류하며 해양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김 교수는 “전라도 사람들은 바람과 물길만 맞으면 어디든지 내 맘대로 배를 몰고 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생각과 기질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러한 문화적 다양성의 터전은 “선종을 받아들여 골품제사회를 무너뜨리며 호족사회를 열고, 절의사상을 주창하며 척신정치를 청산하고 사림정치를 열고,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켜 봉건사회를 타파하고, 5·18민중항쟁으로 민주사회를 구현하는”것으로 역사에서 증명됐다.

고려 말 최고의 수군 장수인 나주 출신 ‘정지’(1347~1391) 장군의 갑옷에 얽힌 역사도 흥미롭다. 그의 갑옷은 철편 주위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통해 철편과 철편을 고리로 연결시켜 만든 철의(보물 제336호)였다. 상반신을 화살과 창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군 창설을 주도하고 쓰시마 정벌을 제안한 정지 장군은 광주로 내려와 세상을 마쳤다. 광주 사람 ‘김덕령’은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킨 뒤 정지의 갑옷을 입고 고인의 무덤 앞에서 제를 올렸다. 광주 사람 ‘유평’도 병자호란 때 정지 장군의 철의를 구해입고 의병을 일 으켰다. 김 교수는 “정지 장군 철의는 광주 사람들에게 국란극복의 신화가 됐다”고 말했다.

나주 출신 정지(1347~1391) 장군의 철제 갑옷.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 갈무리
나주 출신 정지(1347~1391) 장군의 철제 갑옷.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 갈무리
전라도에 이방인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은 정치적 망명이나 전쟁 등의 이유 때문이다. 외국인이 귀화해 집단으로 사는 마을을 향화촌이라고 불렀다. 임진왜란 때 명량대첩에서 패전한 왜군 일부가 귀국하지 않고 해남에 정착해 20세기 초까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영암군 곤일면과 곤이면에도 향화촌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파병됐던 명나라 진린 장군의 손자도 명나라가 망하자 망명해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에 정착했다. 전북 정읍과 전남 영광에도 명나라 사람들이 이주해 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회적 충격을 노래로 달랬던 전라도의 문화도 소개하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던 여순사건 이듬해 나온 ‘여수 야화’는 가사 내용 때문에 지역 사람들이 애창했던 노래다. 이승만 정권은 1949년 9월 이 노래에 철퇴를 내려 대한민국 최초의 금지곡이 됐다. 광주 사람들은 5·18민주화운동 이후인 1982년 4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충격을 달랬다. 이 노래도 한 때 제창이 금지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지역민들이 애창한 노래가 금지곡이 된 곳도 전라도가 유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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