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여학교 41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0곳(48.8%)이 시대착오적인 교훈을 유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순결이 교훈인 학교.학교 누리집 갈무리
“왜 여학생만 순결하고 어진 어머니가 돼야 하나요?”
이른바 ‘스쿨 미투’ 등으로 학교 안 성차별·성폭력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강원도 여학교 가운데 절반 정도가 여전히 가부장제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교훈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정의당의 청소년 예비당원협의체인 ‘허들’ 강원지부가 강원지역 281개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교훈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여학교 41곳 가운데 무려 절반에 가까운 20곳(48.8%)이 성차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교훈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가운데 ‘순결’이나 ‘어진 어머니’ 등 명백히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는 학교도 9곳(22.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학교 상당수는 ‘착한 딸’이나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등 특정 가치를 성별화하는 차별적인 교훈을 가진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여학교와 달리 남학교 교훈 중에는 ‘순결’이나 ‘어진 아버지’ 등의 내용은 없었다. 남학교 교훈으로는 ‘관용’, ‘강건’, ‘창조’ 등이 대부분이었다. 남녀 학교를 견줘보면, ‘여성=순결, 남성=관용’이라는 식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를 여성에게만 한정하는 등 성고정관념을 고착화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허들 강원지부는 이날 학교별로 성차별적인 내용을 담은 교훈 사례를 공개하고 강원도교육청에 즉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노서진(17) 허들 강원지부장은 “성차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교훈은 여학생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학교가 여전히 청소년을 보호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구태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교훈에 성차별적 사고관을 그냥 두는 것은 공교육이 노골적으로 청소년에게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교훈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 동문 등 학교 구성원의 합의 속에 만들어진다. 하지만 개교한 지 오래된 학교는 미처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학교가 교훈에 대해 재검토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권고하겠다. 하지만 강제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허들’은 정의당의 청소년 예비당원들이 구성한 자발적 조직이다. 정의당은 정당법상 당원이 될 수 없는 청소년들에게 당원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 ‘명예당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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