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간 돈의 금액을 집계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에 올해도 어김없이 ‘얼굴없는 천사’가 찾아왔다. 2000년에 처음 시작한 선행이 19년째인 올해도 이어진 것이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는 27일 “오늘 오전 9시7분께 40~50대 중년 남성으로부터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가면 에이포(A4) 용지 상자가 있다. 어려운 이웃에게 힘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는 전화가 걸려와 현장에 가서 확인해보니 상자와 돼지저금통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화를 받은 손명희 주무관은 “다급하고 쫓기듯 짧은 말 한마디만 남기고, 미처 감사의 뜻을 표현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주차장 입구에 있던 상자에는 5만원권 지폐 10다발과 동전이 든 돼지저금통 1개가 들어 있었다. 확인 결과, 모두 5020만195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까지 18년째 19차례에 걸쳐 놓고간 금액은 5억5813만8710원이다. 올해치까지 합하면 19년째 20차례에 걸쳐 모두 6억834만660원이다.
얼굴없는 천사는 또 컴퓨터로 타이핑한 큰 글씨체로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편지글도 함께 적었다. 이 성금은 사랑의 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의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간 에이포(A4 )용지 상자 안에는 돈과 함께 소년소녀가장에게 보내는 격려글도 있었다. 전주시 제공
전주시는 이 얼굴없는 천사의 숨은 뜻을 기리고 아름다운 기부문화 널리 확산할 수 있도록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얼굴없는 천사의 비’를 2009년 12월 세웠다. 시는 또 노송동에 2015년 12월 기부천사쉼터를 조성했는데, 2016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의 사업평가에서 도시재생사업 우수모델로 평가받았다. 주변 도로와 마을을 각각 천사의 길과 천사마을로 이름붙였다.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해마다 지속되는 얼굴없는 천사의 선행을 본받자는 뜻에서 숫자 천사(1004)를 본딴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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