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천연기념물 325호인 개리 등 철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강 너머 북한 쪽을 향해 날갯짓하고 있다.
오리과에 속하는 천연기념물인 개리 수십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거리며 북쪽 땅을 향해 일제히 날아올랐다. 큰기러기 등 겨울 철새는 남북 분단의 상징인 철책 위를 날아다녔고, 머리 장식 깃이 독특한 후투티 한마리도 철책 위에 아슬하게 앉아 있다가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버렸다. 오직 사람만이 분단된 땅에 서서 저 먼 땅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지난 28일 민간인출입통제지역(민통선)인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일대 한강하구의 철새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이날 생태조사를 위해 한강하구 조류 서식지를 둘러본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베른하르트 젤리거(48·경제학 박사) 대표는 “김포 한강하구 일대는 강원도 고성, 철원, 경기도 연천 등 다른 접경지역에 비해 개발이 덜 돼 자연생태가 우수하고 문화적으로도 보전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조사는 김포시가 한강하구 중립수역의 생태적 가치를 확인하고 보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 환경단체인 독일 한스 자이델 재단에 의뢰해 진행한 것이다. 이 재단은 1967년 독일 뮌헨에서 창립해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EU) 등의 자금 지원을 받아 주로 개발도상국의 민주주의와 평화 발전 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조사는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용강리, 조강리 일대에서 내년 6월 중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 한강하구 철책 위에 앉아 있는 후투티.
이날 조사를 통해 월곶면 유도 주변과 하성면 시암리 일대 한강하구 농경지와 둔치 부근에서는 천연기념물 325호인 개리 270마리를 비롯해 흰뺨검둥오리, 흰꼬리수리, 큰기러기, 쇠기러기 등 조류 3천여마리와 고라니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젤리거 대표는 특히 북한의 대표적인 개리 서식지인 평안남도 문덕군처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개리가 이곳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것에 주목했다. 희귀 철새인데다 북한 문덕에서도 이 새가 대량 발견된 점에 비춰, 남북 생태계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지역이면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서해안과 맞닿은 청천강 하구에 자리한 문덕 철새보호구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와 흑두루미를 비롯해 개리 등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 꼽힌다. 이 지역은 두만강 하구인 함경북도 라선철새보호구와 함께 지난 5월 북한의 첫 람사르 습지로 등재됐다. 한동욱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본부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개리는 물때에 따라 청천강에서 한강하구, 강화 북단까지 자유롭게 이동한다”며 “철새들에게 국가나 지역 경계는 의미가 없고 남북 생태계는 하나다. 남북 간 정치통일뿐 아니라 생태통일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28일 경기도 김포시 한강하구 생태조사를 하는 독일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베른하르트 젤리거 대표(오른쪽)와 최현아 연구원.
젤리거 대표는 독일의 사례를 언급하며 한강하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은 1990년 통일 이전부터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갖고 생태가치를 파악하고 준비했다. 통일 후 철의 장막으로 불리던 1400㎞ 접경지 경계의 85%가 ‘그뤼네스 반트’(녹색띠)로 탈바꿈해 모범 사례로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남북 협력 분위기 속에 통일경제특구 등 접경지역의 장밋빛 개발계획과 관련해 “너무 현대화나 개발에만 치중하지 말고 이 지역처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한국 농촌사회의 특성을 살려 발전시키면 좋겠다.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시설도 미리 협의하고 준비했다가 필요할 때 놓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생태조사 결과는 북한 쪽과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최현아 재단 연구원은 “북한도 최근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고 국제 환경 협력의 일원으로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향후 남북 전문가 조사와 북 지역 조사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사전 예비조사”라며 “조사 결과를 국제사회와 공유하고 국제회의 등에서 북 대표단과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10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습지 목록’을 처음 공개했다. 북한의 주요 습지로는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 하구, 두만강 하구, 강원도 석호 등 총 54개 습지가 제시됐다.
김포/글·사진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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