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조원대 금괴를 밀수한 혐의를 받는 피고인에게 벌금 1조3000여억원을 선고했다. 이 벌금액은 역대 최대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최환)는 홍콩에서 사들인 금괴를 한국인 여행객에게 맡겨 국내 공항을 경유해 일본으로 밀수입한 혐의(관세법 위반 등)로 기소된 ㄱ(55)씨 등 5명에게 각각 징역 2년6월~5년에 벌금 1조1000억~1조3300여억원, 추징금 1조7000여억~2조여억원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홍콩에서 금괴를 사들여 국내 공항의 환승 구역으로 반입한 뒤 관세청에 신고하지 않고 몰래 일본으로 반출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무료 일본 여행 등을 미끼로 일반 여행객에게 금괴를 나르도록 유인해 범행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죄가 무겁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선고된 벌금은 관련법에 따라 금괴의 원가를 기준으로 산정됐고, 추징금은 시중 가격으로 결정됐다.
ㄱ씨 등은 2015년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1년6개월 동안 홍콩에서 사들인 금괴 4만여개(2조원어치)를 인천과 김해 등 공항 환승 구역으로 들여온 뒤 공짜여행을 시켜준다며 꾀어낸 여행객에게 맡겨 일본으로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2014년 일본이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려 일본의 금 시세가 급등하자, 세금이 없는 홍콩에서 금괴를 사들여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빼돌려 매매차익을 노린 것으로 드러났다.
형법에는 형이 확정되고 30일 이내 벌금을 완납해야 하는데, 이 기간에 벌금을 내지 않으면 징역형과 별도로 노역을 해 벌금을 갚아야 한다. 노역은 벌금 규모와 상관없이 최장 3년까지 선고되는데, ㄱ씨 등의 벌금 1조3000여억원을 3년(1000일)으로 나누면, 이들의 일당은 13억여원이다.
벌금을 내기 어려운 빈곤층 등을 위한 입법 취지가 왜곡돼 형평성에 따라 일당 상한 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법 개정 여론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른바 ‘황제노역’ 논란이다. 제도 개선은 더딘 상황이다. 법제처는 ‘노역장 유치 기간을 최장 3년보다 더 늘리는 식으로 형법을 개정해 고액벌금 대상자의 처벌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법무부는 ‘기간을 늘리면 노역장 유치가 벌금 집행 확보를 위한 간접 수단이 아닌 추가 징역형으로 기능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부정적인 태도다. 부산지법 관계자는 “현행법에 따라 판결했다. 노역장 유지 관련 논란이 많지만 벌금형을 징역형으로 대체하는 것은 원칙적 모습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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