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16년 만에 밝혀진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범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동료 수감자를 협박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형사6단독 황성욱 판사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며 동료 수감자를 협박한 무기수 김아무개(41)씨한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황 판사는 “김씨가 동료 수감자한테 편지를 보내, 앞으로 같은 교도소에 수용되면 생명과 신체에 해악을 가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 피해자를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었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2017년 11월 다른 교도소로 이감된 뒤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ㄱ씨에게 협박 편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편지에는 “‘생이 마감될 때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한다’, ‘잔여 형기가 남았으니 돌고 돌아 만날지 모르는 것이 징역살이다. 그 날이 우리 둘 다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협박이 담겼다. 김씨는 ㄱ씨가 이 사건 재수사 때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고 여기고 이런 편지를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끔찍한 범행 수법, 유전자의 증거 능력, 불기소 뒤 재수사, 일관된 범인의 은폐 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초기 수사의 부실로 이 사건은 하마터면 영원한 미해결 사건이 될 뻔했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2010년 제정된 유전자(DNA)법과 2015년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을 디딤돌로 겨우 체면을 세웠다.
2001년 2월4일 오후 3시40분 전남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에서 여고생 박아무개(17·광주 남구)양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성폭행 당하고 목에 졸린 흔적이 있었다. 몸 안에서는 용의자의 유전자가 나왔다. 당시 경찰은 용의자 200명의 유전자를 대조했으나 확인되지 않자 한 달 만에 수사를 중단했다.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유전자법이 제정된 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2012년 9월 박양의 몸에서 나온 유전자와 수감 중이던 무기수 김씨의 유전자가 일치했던 것이다. 김씨는 2003년 광주 동구의 전당포 강도살인 사건으로 수감 중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김씨를 불기소했다.
부실수사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자 검찰은 2015년 재수사에 나서 2016년 8월 김씨를 성폭력범죄 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태완이법 덕분에 공소시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무기수 김씨는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다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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