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때 고문·폭행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았던 옛 국군광주병원(광주시 서구 화정동 325) 전경. 정대하 기자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들의 정신적 외상 치유를 담당할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전국 5곳에 단계적으로 설치하는 게 적절하다는 정부 용역 결과가 나왔다. 센터 본원 설립이 적합한 곳으로는 호남권(광주)의 입지 점수가 가장 높게 나왔다.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센터 설립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22일 <한겨레>가 입수한 행정안전부의 ‘국립 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용역 최종 보고’ 결과를 보면,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센터 광역거점(분원)을 전국 5개 권역에 3단계로 나뉘어 설립하는 방안이 나온다. 이 보고서는 행안부 의뢰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팀이 작성했다.
센터 설립과 관련해 보고서는 1단계로 호남권(광주)과 수도권(서울)에 설립한 뒤, 2단계로 영남권(부산)과 제주권, 3단계로 중부권(대전)에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권역별 대상지는 수도권은 영등포구 당산공영주차장, 호남권은 옛 국군광주병원, 영남권 부산민주공원, 제주권 제주4·3평화공원, 중부권은 옛 대전형무소다. 대상지는 예비지 2곳 중 사회적 합의성, 자원확보성, 대상지 접근성, 환경친환성, 대상지 상징성을 비교해 100점 만점 기준으로 계량화해 선정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금남로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본원 설립 적합지로는 광주와 서울이 꼽혔다. 이들 2곳 중 1곳엔 광역거점(분원)과 함께 본원도 설립된다. 광주는 94점으로 서울(88점)보다 점수가 높았다. 광주는 2012년 광주트라우마센터를 개원한 뒤 가장 먼저 트라우마 치유를 시작해 경험이 축적돼 있고, 광주시가 5·18민주화운동 때 고문·폭행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았던 옛 국군광주병원 터를 센터 설립 부지로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힌 것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보고서는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와 관련한 해외네트워크는 서울보다 광주가 더 견고하다”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18기념식에 참석해 국립 광주트라우마치유센터 건립을 약속한 바 있다.
서울은 국가폭력 피해자 다수가 수도권에 거주해 접근성이 유리하고, 전문인력 확보가 가장 쉽다는 것이 장점으로 언급됐다. 하지만 주요 국가 기관이 서울에 편중돼 신규 기관 설립 때는 시설물을 분산 배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국가폭력 피해자를 치유하는 국립 트라우마 센터는 세계 70여 개국에서 130곳 넘게 운영 중이지만, 국내에는 전무하다. 한홍구 교수는 “국가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국가가 치유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쪽은 “최종 용역 결과가 나온 뒤 방향을 설정하고 예산 확보 등 후속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제주4·3,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국가폭력 피해자를 97만5092명으로 추산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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