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사령부 이전부지 환원 원주 범시민대책위원회가 30일 오전 옛 1군사령부 정문 앞에서 출범식과 함께 궐기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원주시민연대 제공
“육십 평생 1군사령부 철조망만 보고 살았습니다. 사령부 해체 소식에 이제 좀 감옥 같은 철조망이 철거되고 지역이 개발되나 했더니 탄도미사일 부대라니 말이 됩니까?” 강원도 원주에 사는 이강모(58)씨는 30일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날 오전 옛 1군사령부 정문 앞에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시민 8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저마다 ‘탄도미사일 절대반대’, ‘1군부지 즉각 반환’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1군사령부 터를 시민들에게 환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아무리 국방부 땅이라도 하더라도 인근 주민들과 사전에 의견을 나누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는 거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이상우씨(47)도 “1군사령부 부지 옆에는 4만2000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탄도미사일 부대로 적합한 땅이 아니기 때문에 화력부대는 산속으로 가야 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1군사령부는 1954년부터 원주에 주둔하며 강원 중동부 전선 방어를 맡아왔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2.0’에 따라 지난해 12월31일 공식 해체됐다.
1군사령부 해체 소식에 그동안 1군사령부 터 환원을 요구했던 시민들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곳에 미사일 지휘부대를 이전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지상작전사령부 화력여단이 창설식을 갖고 부대 운영에 들어갔다. 여기에 앞으로는 기존 미사일부대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현무와 신형 전술지대지유도탄(KTSSM) 등이 추가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들은 이날 옛 1군사령부 정문 앞에서 ‘1군사령부 이전부지 환원 원주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렸다. 원주시의회와 원주시민연대, 원주여성단체협의회 등 지역 15개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했다.
대책위는 “1군사령부가 원주에 주둔한 뒤 65년 동안 시민들은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국가 안보라는 대의를 위해 참고 살았다. 그러나 사령부만 해체되면 터를 시민들에게 돌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또 다른 군부대를 배치하는 것은 시민을 우롱하는 조처”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국방부가 1군사령부 터를 돌려줄 때까지 시민들과 연대해 투쟁하고 서명운동과 대규모 궐기대회, 국방부·육군본부 앞 집회 등 실력행사에 나설 참이다.
국방부가 지역과 별다른 협의도 없이 1군사령부 터에 또 다른 군부대를 주둔하도록 하자, 원주시도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원주시는 최근 국방부에 1군사령부 터를 시민에게 돌려달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대신 전체 62만㎡의 면적 가운데 23%에 해당하는 14만㎡에 군 역사 자료실과 체험시설 등을 갖춘 평화박물관과 공원 등을 조성하는 제안을 했다. 또 현재 1군사령부 터에 들어와 있는 부대는 외곽으로 이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선경 대책위 공동대표는 “그동안 시민들이 사령부 터를 반환해달라고 지속해서 요구해왔는데도 국방부는 원주시나 주민 의견 수렴을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고 밀실에서 군사작전 하듯 군부대 이전을 추진했다. 1군사령부 터를 반환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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