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선거 때마다 혼탁·과열
후보자 2~5명에 유권자는 500~2000명
내표·남표·뜬표 손쉽게 구분 가능
금품 제공해도 신고할 확률 낮아
역대연봉·예산·인사 등 권한 큰데
선거기간 짧고 토론회 없이 ‘깜깜이’
후보자 2~5명에 유권자는 500~2000명
내표·남표·뜬표 손쉽게 구분 가능
금품 제공해도 신고할 확률 낮아
역대연봉·예산·인사 등 권한 큰데
선거기간 짧고 토론회 없이 ‘깜깜이’
“돈냄시가 진동헌당게. 무슨 돈 넣고 돈 먹는 빠찡고도 아니고. 요것이 적폐 아니믄 멋이 적폐겄소?”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한달여 앞둔 7일 광주 광산구의 한 농협 조합원이 요즘의 마을 분위기를 전하며 혀를 찼다. 이날 광주지검은 이 지역의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 ㄱ(62)씨를 구속했다.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전국에서 처음 나온 구속자다.
조합장 선거가 지역별 선거에서 전국 동시 선거로 바뀐 것은 2015년이다. 선거 방식 변경의 가장 큰 이유는 ‘돈 선거 근절’이었다. 하지만 매표 행위는 4년 전에 이어 올해도 전국 각지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그 원인을 전문가들은 강한 연고주의, 조합장 권한 과다, 선거운동의 지나친 제약 등에서 찾는다.
조합장 선거는 좁은 지역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후보자와 조합원이 여러 연고로 얽혀 있기 마련이다. 지역 조합 선거에는 일반적으로 후보자 2~5명이 나서는데, 유권자인 조합원은 500~2000명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 성향을 내표·남표(경쟁자 지지표)·뜬표(부동표)로 분류한 뒤 뜬표를 집중 공략하는 게 당선에 이르는 왕도라는 게 선거판의 진리로 굳어진 지 오래다. 평생 같은 지역에서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는 관계여서 금품을 줬다고 당국에 신고할 확률도 낮다.
조합장한테 주어지는 막강한 권한은 후보자 사이의 무한경쟁을 야기한다. 도시 지역 조합장은 1억원 안팎의 연봉에 판공비 1억~2억원, 여기에 기사와 차량까지 제공받는다. 직원 100~150명의 인사권은 물론, 조합 예산 집행과 사업 결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할 수 있다. 농어촌 지역 조합장은 보수가 도시 조합장의 절반 정도에 그치지만, 시장·군수 등으로 도약하는 정치적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 7년 전 지방의원의 겸직을 금지하자 당시 조합장을 겸임하던 광주시의원 한명과 광주북구의회 의장이 ‘지방의원보다 조합장이 낫다’며 미련없이 직을 던졌다.
조합장 선거는 선거운동 기간이 14일로 짧고, 후보연설회나 정책토론회가 없어 인물 비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깜깜이’ 선거는 인기와 평판 투표로 흐르기 쉽고 구조적으로 돈 선거에 취약하다. 후보등록 이전에 후보자가 할 수 있는 행위는 문자 인사가 전부다. 후보등록을 해도 선거원이나 사무소를 둘 수도 없고 후보 혼자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게다가 조합장 선거는 공직선거와 달리 15% 이상을 득표해도 선거비용을 보전해주지 않기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심리가 만연해 있다.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도록 토론회나 연설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의 감시기능을 강화하고 조합장의 권한을 축소해야 ‘투전판’ 같은 선거를 막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내려진 지 오래다. 조합원 각자의 각성도 꾸준히 요구됐다. 올해는 좋은농협만들기 국민운동본부와 개혁 성향 조합장 모임인 ‘정명회’를 중심으로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좋은농협운동본부는 이달 안에 “돈 쓰는 선거를 하다 재선거가 이뤄지면 조합의 추가부담액을 모두 변상하겠다”는 서약을 후보자들에게 받기로 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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