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학교 남학생들이 사랑의 예술제에서 곡에 맞춰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박임근 기자
“발달장애인들이 성인이 됐을 때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 일이 정말 녹록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잘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순수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문화예술이라는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일반예술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아이들의 감정·표정·몸짓 자체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예술제를 여는 이유입니다.”
전북 군산 산돌학교의 홍진웅 교장은 14일 저녁 군산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2019 사랑의 예술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산돌학교는 발달장애대안학교로 아이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고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주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해마다 예술제를 열고 있다.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말한다.
산돌학교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김영호씨가 행사에 참석해 홍보대사 명함을 받고 있다. 박임근 기자
이날 예술제에서 남학생들은 피아노 연주곡 <버터플라이 왈츠> 등과 기독교 찬양곡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고, 여학생들로 ‘블루로즈걸스’란 이름의 팀을 꾸려 춤을 선보였다. 학생들은 <터>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등의 곡을 오카리나로 연주하기도 했다. 공연에 앞서 만난 권아무개양은 “오카리나를 연주하는데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참여하지만 떨린다. 최근 다리를 다쳐서 그동안 연습했던 댄스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 산돌학교 ‘2019 사랑의 예술제’에서 여학생들로 꾸려진 그룹 ‘블루로즈걸스’가 춤을 추고 있다. 박임근 기자
이날 행사에서는 이 학교의 예술단 ‘그랑’의 연극 <군산, 1919년 그날>이 특히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랑은 ‘세상 사람들과 서로 둥그렇게 어우러져 살아가라’는 뜻의 이름으로 2015년부터 해마다 한 작품씩 이 지역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해왔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는 특별한 준비를 했다. 일제강점기에 조국 독립을 외치며 만세운동을 펼쳤던 1919년 3월,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으로 군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군산, 1919년 그날>은 군산을 배경으로 만든 이야기로, 일본강점기 때 독립선언서를 공부하던 아이들과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보통 발달장애인들과 일반 배우들이 함께 공연하는 작품은 많지만, 그랑 작품의 특징은 모든 배역을 발달장애인들이 소화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지난해 12월21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앞에서도 공연했다. 이날 연극무대에 오른 허아무개군은 “일본 순사 역할을 맡았는데 떨리지 않고 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산돌학교 사랑의 예술제에서 학생들이 서로 오카리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박임근 기자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파란장미는 꽃과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으로 파란장미가 피어났다. 지역사회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파란장미(발달장애인)는 결코 세상에 꽃을 피울 수 없다”고 말했다. 파란장미운동은 발달장애인 인식개선을 통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캠페인이다.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김영호씨도 참석해 “사실 아이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2019 사랑의 예술제’에서 산돌학교 학생들로 꾸려진 그랑 극단이 연극 <군산, 1919년 그날>을 공연하고 있다. 박임근 기자
홍진웅 교장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소통 및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해서 시작했던 연극수업이었는데 지금은 이 연극을 통해서 많이 좋아지고 있다. 비장애인이 흉내 낼 수 없는 순수의 가치가 아이들의 몸속에 내재해 있어 연극을 곧잘 한다. 앞으로도 계속 예술제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돌학교는 2007년 3월에 세워졌다. 발달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아동·청소년, 그리고 성인발달장애인들에게 저마다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 대안학교다. 군산지역 선교단체인 평화의선교회가 운영한다. 이름을 딴 산돌(living stone)은 성경(베드로전서 2장4절)에 나오는 말로 예수를 뜻하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장애인들도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학교 쪽은 설명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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