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구시 미대동 주민들이 1919년 4월26일, 28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펼쳤던 마을앞 여봉산의 모습.
대구 미대동 독립만세운동이 100년만에 재조명된다.
‘광복소나무 사랑모임’과 ‘미대동 3·1만세운동 선양비 건립추진위원회’가 미대동 독립만세운동을 재조명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미대동에서는 1919년 4월26일과 28일 이틀 동안 주민들이 마을앞 여봉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사건으로 채봉식 등 마을 청년 8명이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6월∼8월씩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도심지 서문시장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그해 4월부터 만세시위가 대구 전역으로 확산됐다.
미대동 주민 100여 가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오는 28일 오전 10시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고, 마을에서 100년전 만세시위를 벌였던 여봉산 정상까지 2㎞를 ‘여봉산 독립만세운동길’로 이름 짓는다. 이어 3월1일에는 대구 도심지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대구시가 주최하는 3·1절 행사에 참여한다. 100년전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4월26일에는 8명의 애국지사를 기리는 ‘선양비 건립 제막식’을 열고 여봉산과 마을입구 곳곳에 유적지 안내 표지판을 세운다.
이상호(85) 미대동 선양비 건립 추진위원장은 “당시 20살의 나이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가 옥고를 치른 권재갑 선생이 후손이 끊어져 아직 독립유공자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민간단체와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포상과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미대동 독립운동의 역사’를 펴내는 재조명사업도 추진된다. 최주원(67) ‘광복소나무 사랑모임’ 회장은 “마을앞에서 2일동안 만세운동을 펼쳤다고 돼있지만 사실은 3일동안 시위를 했다고 한다. 자료를 계속 수집해 진위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또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 7명의 손자와 증손자들의 소재파악 등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