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들이 지난 8일 광주지법에서 전두환 재판의 방청권을 얻기 위해 줄지어 응모하고 있다.연합뉴스
전두환씨의 재판 출석을 앞두고 광주가 술렁이고 있다. 광주시민들은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평화롭고 신중하게 대응하겠다는 태도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재판장 장동혁)은 11일 오후 2시30분 광주지법 201호 대법정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8)씨의 첫번째 공판을 연다. 재판부는 지난해 5·7·10월, 지난 1월 네 차례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공판에 출석하지 않은 전씨에게 구인장을 발부한 상황이다. 버티던 전씨는 그제야 변호인을 통해 “부인 이순자(79)씨와 함께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재판부는 공판을 일반인에 공개하지만 방청 인원을 103석으로 제한하고, 경찰에 청사 주변의 질서유지를 요청했다.
광주시민들은 ‘드디어 그가 광주에서 단죄를 받게 됐다”면서도 “향후 진상규명 활동과 왜곡처벌법 제정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차분하게 대처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민단체들은 11일 오후 1시30분부터 광주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 주변과 전씨가 통과하는 길목에서 ‘인간 띠 잇기’를 진행한다. 단체들은 ‘전두환 반성하고 사죄하라’, ‘우리는 사죄를 받아주겠다’는 등의 손팻말과 펼침막 수십여장을 준비하고 있다. 법원 정문 앞에는 5·18민주화운동 때 광주 상공에 헬기가 떠 있는 사진 10여장을 전시하기로 했다. 또 공판이 끝나면 국민한테 전씨를 처벌하고 5·18 역사를 바로 세울 것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유가족인 조카 조영대 신부는 “전두환이 광주의 재판정에 선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전씨가 혐의를 부인 할수록 죄만 더 커진다. 시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진정으로 뉘우쳐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심정이 복잡다단하다. 그가 속죄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감정적 대응으로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한테 빌미를 주지 않도록 차분하고 냉정하게 의사를 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씨가 법정에 서는 것은 1996년 내란죄 등으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지 23년 만이다. 그는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주장했다. 분노한 5월단체와 유가족은 같은 달 27일 전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이듬해 5월3일 헬기사격과 집필과정을 수사한 결과를 종합해 그를 기소했다. 하지만 전씨는 서면을 통해 “5·18은 자신과 무관하게 벌어졌으며, 알고 있는 내용도 없다”는 진술만 되풀이해왔다.
형법에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벌금 500만원 이하의 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처벌을 하려면 주장한 내용이 허위사실이며, 허위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표현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5·18 당시의 헬기사격은 이미 국방부 등의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된 만큼 재판의 쟁점은 ‘고의성이 있었는지’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안관옥 정대하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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