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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 재판장 질문에 상체 숙이며 공손히 답변

등록 2019-03-12 05:00수정 2019-03-12 07:26

전두환 광주지법 ‘명예훼손’ 재판 스케치
방청객 “살인자” 고함에 빤히 쳐다보기도
검찰-변호인 진술 길어지자 졸다 깨다 반복
사죄도 반성도 없었다. 11일 낮 광주지법 형사법정에 나온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다소 피로한 기색이었으나 주변의 부축을 받지 않고 스스로 걸어 법정으로 들어갔다. 입장 도중 몰려든 취재진을 향해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는 했으나, 혈색이나 걸음걸이는 아흔살을 바라보는 고령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은 예정된 이날 오후 2시30분에 정확하게 개정했다. 전씨는 재판장이 진술거부권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전씨는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 등이 마이크를 통해 말하는 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재판부가 제공한 헤드셋을 쓰고 다시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았다.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인 인정신문 때도 전씨는 헤드셋을 썼다. 그는 생년월일과 주소, 본적 등을 확인하는 판사의 질문에 “맞습니다” 또는 “네”라고 또박또박 답변했다.

인정신문이 마무리된 뒤 전씨는 아내 이순자씨와 나란히 앉아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을 지켜봤다. 이씨는 이날 전씨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 ‘신뢰관계인’으로 동행했다.

전씨는 재판장의 질문에 답변할 때마다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이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본격적인 재판 절차가 시작되자 검찰은 전씨의 범죄 혐의를 요약 진술하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활용했다. 전씨는 자료가 한 쪽씩 넘어갈 때마다 몸을 숙여 모니터 글씨를 꼼꼼하게 읽기도 했다. 검찰이 헬기사격과 관련한 공소사실을 설명할 때는 전씨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졌다.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전씨는 벽에 걸린 모니터와 피고인 자리에 설치된 모니터를 번갈아 보다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듯 이씨와 자리를 바꿔 앉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쪽과 변호인의 모두 진술이 길어지자 꾸벅꾸벅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씨는 재판이 지루한 듯 눈을 감았다 뜨거나 손으로 깍지를 끼는 행동을 반복했다. 전씨는 변호인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종종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전씨 쪽 변호인이 헬기사격을 부인하자 방청석이 한동안 웅성거리기도 했다.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이 끝나고 재판이 마무리되자 전씨는 별다른 의사표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인 이씨는 공판이 끝나자 “경위를 적었다. 제출해도 되느냐”고 묻고선 문서가 담긴 편지봉투를 판사석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를 “재판에 대한 당부로 알겠다”며 받아들였다.

그 순간 갑자기 방청석에서 소란이 일었다. 방청을 하던 한 남성이 벌떡 일어나더니 “전두환은 살인마”라고 외쳤다. 다른 방청객들 사이에서도 고성이 쏟아졌다.

전씨는 소리친 남성을 빤히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지만, 방청객들 목소리에 묻혀 내용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전씨는 법원 관계자의 조언에 하려던 말을 삼킨 채 몸을 돌려 피고인 대기실로 향했다.

전씨 부부는 재판이 끝난 뒤 바깥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며 30분 넘게 청사 안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청사 밖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경호원들에게 에워싸여 힘겹게 승용차에 오른 전씨 부부는 거세게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낭패를 겪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현장을 벗어났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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