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며 기자들이 질문하자 “왜 이래”라며 뿌리치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연합뉴스
전두환씨가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것은 아직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5·18 발포명령자’를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재판부가 전씨의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과거 전두환씨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받아들인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 논리가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11일 광주지법 201호 대법정에서 첫 공판이 열린 전씨 재판에서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1938~2016) 신부를 전씨가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것이 사자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재판의 일차적 쟁점은 헬기 사격이 실제로 있었는지와 전씨가 헬기 사격 사실을 알고도 조 신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자서전에 포함시켰는지 여부다. 안길정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추징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등 거의 ‘치외법권’ 상태였던 전씨가 재판정에 선 것은 법의 형평성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사 청산 문제가 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재판은 단순히 전씨의 명예훼손 혐의가 성립하는지를 가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전씨와 신군부는 1980년 5월21일 오후 1~3시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조 신부와 5월 단체 등의 주장을 극구 부인해왔다. 학계와 법조계는 그 이유가 헬기 사격을 인정할 경우 그동안 발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난 39년간 신군부가 주장해온 ‘자위권 발동’ 주장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고소인 쪽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장은 “헬기 사격은 시민을 상대로 한 적대적 전투행위의 상징이다. 1980년 5월21일 오후 4시35분 국방부가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기 전, 조 신부 주장처럼 오후 1~3시께 헬기 사격이 이뤄졌다면, 누군가 발포명령을 내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과 5·18 3단체 회원 등이 지난 1월7일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와 법적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결국 이번 전씨 명예훼손 재판의 유무죄 여부는 39년 전 광주에서의 발포가 국방부의 승인에 따른 현장 지휘관의 자위권 발동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명령에 의한 집단 발포였는지를 가늠할 중요한 계기가 되는 셈이다. 최초의 5·18 기록서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쓴 이재의 박사는 “시가지 상공을 비행 중인 헬기 조종사들이 시위대 때문에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까닭이 있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사격했다면 자위권 발동이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에서 헬기 사격이 인정되면 이는 곧 발포명령이 있었다는 방증이 된다는 얘기다.
실제 5월21일 오후 1~5시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 일대에선 공수부대원들의 집단 발포로 시민 34명이 총을 맞고 사망했지만,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 밝혀지지 않고 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발포명령자에 대해서는 “판단 불가”라며 밝히지 못했다. 학계와 시민사회는 이번 전씨 재판이 발포명령자 규명 등 남아 있는 5·18 진상조사에 힘을 싣는 사법적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 합의로 구성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들의 자격 논란으로 위원 선임조차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정대하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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