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한 저층 아파트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그동안 폐쇄적인 형태로 조성되던 아파트 단지를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전 과정에 개입하는 방안을 내놨다. 정비계획 수립 단계부터 서울시가 참여해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아파트’ 대신 도심 경관을 고려한 디자인을 유도하고, 폐쇄된 거대 단지 형태가 아니라 소규모 블록형 단지로 개방된 아파트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12일 서울시는 민간 주도의 정비계획 수립 전 단계에 시가 아파트 층수·디자인 등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도시·건축 혁신안’을 발표했다. 서울을 획일적인 ‘아파트 공화국’이 아니라 다채로운 경관의 특색있는 도시로 재구성하겠다는 게 이번 혁신안의 목표다.
혁신안의 핵심은 아파트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시 아파트 조성기준’을 마련해 사업계획 초기부터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앞으로 모든 아파트 정비사업은 하나의 단지를 거대 블록이 아닌 여러 개 중소블록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조성된다. 블록 사이사이엔 보행로를 내기로 했다. 아파트 주민 외에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도로와 인접한 아파트는 도로변 낮은 층수에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하고 1층을 기둥만 설치하는 필로티 형식으로 지어 일반 시민들의 보행공간이 넓어질 수 있게 유도할 방침이다. 역세권 등 대중교통 중심지 주변의 아파트는 상업·업무·주거공간이 어우러진 복합개발을 유도하기로 했다.
프랑스 파리의 저층 아파트. 한겨레 자료 사진
영국 런던의 주상 복합 건물. 한겨레 자료 사진
이 조성기준은 시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사업계획 초기에 조합에 제시하기로 했다. 기존에 제시되던 용적률 등 일반적 계획요소뿐만 아니라, 경관과 지형, 거주자의 가구 형태, 보행 활성화 방안 등을 가이드라인에 담아 아파트 단지별로 맞춤형 정비계획을 만들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구릉지에 있는 아파트 단지는 건축물 높이에 차이를 둬 주변 지형과 어울리도록 짓는 식이다.
시는 성냥갑 같은 획일적인 아파트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파트 디자인을 유도하기 위해 공공과 주민이 함께 설계지침을 만드는 ‘현상설계’ 방식도 적용할 예정이다. ‘도시건축혁신단’이 공모 지침을 제시하면 조합(사업 추진위)이 이를 근거로 공모를 진행하고, 도시건축혁신단이 공모작을 2개 이상으로 추리면 조합이 주민 총회를 열어 최종 당선작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최근 고덕·강일지구는 개별 단지마다 주민이 현상설계에 참여해 다양한 건축디자인이 도입됐다. 시는 1~5억원 규모로 현상설계 공모 비용 전액과 주민총회 비용 일부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혁신안의 또다른 핵심은 정비계획 수립에 앞서 ‘사전 공공기획’ 단계를 집어넣은 것이다. 현재 재건축·재개발 정비계획은 민간이 자체적으로 수립한 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의 심의를 받는 식인데, 이 순서를 바꿔 도계위가 아파트 단지별로 정비계획 가이드라인을 앞서 제시하도록 하면 공공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서울시 판단이다. 그동안 정비계획안의 검토와 조정은 사실상 계획안 수립 마지막 절차인 심의 단계에서 도계위를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도계위의 심의만으로는 다양한 도시 경관이 고려된 계획안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고, 이 과정에서 정비계획 결정이 지연되면서 재건축·재개발 등의 사업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를 위해 시는 정비사업 전 과정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50명 규모의 ‘도시건축혁신단’(가칭)을 올 하반기에 출범시키고 점차 공적개발기구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시는 올해 4개 지역에 시범 사업을 먼저 추진할 방침이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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