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 금강공원에 있는 ‘2006년 황기 기념비’. 일본의 연호인 황기를 기념한 비석이다.
19일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에서 금정산 정상 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해발 150m 지점까지 올라가니 높이 4m, 너비 6m 크기의 ‘2600년 황기 기념비’가 나왔다. 일본 천황이 즉위한 기원전 660년을 첫해로 삼는 일본식 연호로 2600년째 되는 해를 기념한 비석이다. 이 황기 기념비는 1940년 자연 화강암 너럭바위에 글자를 새겨 만들어졌다. 일부 글자는 시멘트로 메워진 상태다. 황기 기념비 맞은편 등산로에는 일본식 13층 석탑(후락탑)이 보였다. 기념비 근처 너른 바위에서 쉬고 있던 등산객 김아무개(62)씨는 “시민들이 많이 찾는 금강공원에 일제 잔재물이 있는지 몰랐다. 이 길로 금정산에 종종 올랐지만, 의식하지 못했다. 당연히 모두 철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에 있는 동래금강원 표지석. 일제강점기 때인 1940년 세워졌다.
황기 기념비에서 50m가량 아래로 내려오면 금강공원의 옛 이름인 동래금강원 표지석이 있다. 금강공원은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이 휴양지인 동래 온천 뒤쪽 금정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만들어졌다. 표지석은 1940년 이곳이 동래금강원으로 이름 지어지면서 세워졌다.
표지석 근처에 있는 일본식 연못 청룡담에도 등산객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박아무개(65)씨는 “어릴 때 부모님과 이곳을 자주 찾아 추억이 있다. 금강공원의 일제 잔재는 철거하기보다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것이 나을 듯하다”고 말했다.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에 있는 독진대아문 터 표지석. 조선 시대 동래부 동헌의 대문인 독진대아문은 일제강점기 때 금강공원으로 옮겨졌다가 2014년 원래 터로 이전 복원됐다.
금강공원에 있는 일제 잔재물은 모두 8종인데, 철거냐 보존이냐를 두고 시민 의견이 맞서고 있다. 부산시도 명확한 처리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시의 근현대 역사문화 관광벨트 조성 연구 용역에서도 금강공원 일제 잔재물 처리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시는 이르면 다음달 금강공원 일제 잔재물 처리에 대해 시민과 관련 부서 등 의견을 수렴해 방침을 내놓을 예정이다. 시 공원운영과 관계자는 “해마다 3월이면 ‘금강공원 일제 잔재물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집중된다. 시민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고 철거할지, 보존할지 방침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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