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아무개(34)씨가 20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경기도 안양동안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씨 부모를 살해하고 주검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김아무개(34)씨의 기이한 행적이 눈길을 끈다. 범행 뒤 이씨의 동생(31)을 만나 식사를 함께하는가 하면, 범행 준비는 치밀했지만 뒤처리는 허술했다. 그는 어떤 인물이고, 범행을 전후해 벌인 ‘기행’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범행 뒤 이씨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훔쳤다. 그는 연락이 잘 안 돼 부모의 안부를 묻는 이씨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씨 어머니 행세를 하며 카카오톡으로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지난 3월 초 이씨 동생에게 “아들아.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가 있으니 만나보라”고 연락한 뒤 자신이 직접 이씨 동생을 만나 식사를 하며 사업 제안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의 아들까지 만나 새로운 사업 제안을 한 것은 또다른 ‘한탕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씨의 동생은 김씨를 만날 당시 운전기사를 대동해 화를 면했다.
이해할 수 없는 김씨의 행동은 범행 직후에도 있었다.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중국 교포 3명을 모집해 범행에 끌어들인 뒤 ‘치밀한 작전’까지 펼쳤지만, 뒷수습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피해자 집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 사건 당일 자신의 행적은 물론 범행에 사용한 차량을 그대로 노출했다. 게다가 범행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이씨의 아버지 주검만 경기도 평택의 한 창고로 옮겼는데, 이 창고는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한 곳이었다. 계획은 치밀했지만, 범행을 감추기 위한 뒤처리는 아예 하지 않은 것이다.
복수의 경찰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고등학교 때 태권도 선수 생활을 하다 2009년께 미국으로 건너가 8년가량 머물렀다. 김씨는 미국에서 요트사업을 했으나 이혼을 한 뒤 2017년 8월께 자녀 1명을 데리고 귀국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요트사업에 손을 댔으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경찰은 김씨가 요트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알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피해자의 아들이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리며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실을 알게 된 뒤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경찰의 관계자는 “김씨는 나름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지만 한국 물정을 잘 몰라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도 범죄를 은폐하는데 매우 허술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범행을 저지른 김씨가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인 것은 계산된 행동은 아니란 얘기다. 김씨는 이번 범행 이외의 전과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지난 20일 강도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으나, 범행을 주도한 것은 범행 당일 중국으로 달아난 중국 동포 3명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변호사를 선임한 뒤에는 묵비권까지 행사하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
김씨는 중국 교포인 공범 ㄱ아무개(33)씨 등 3명을 고용해 지난달 25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소재 이씨 부모의 아파트에서 이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한 혐의(강도살인)를 받고 있다. 그는 범행 뒤 두 사람의 주검을 각각 냉장고와 장롱에 유기하고, 범행 이튿날 오전 이삿짐센터를 통해 이씨 아버지의 주검이 든 냉장고를 평택의 창고로 옮긴 혐의도 받고 있다. 김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이씨 아버지에게 2천만원을 빌려줬으나 돌려받지 못해 범행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으나, 지금까지 확인된 채무관계는 없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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