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부산 동구 초량동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있던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부산시가 불법 적치물이라며 강제 철거했다.
부산시가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근처의 정발 장군 동상 앞 인도에 있던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강제 철거했다. 시민단체와 동구청이 이곳에 노동자상을 건립하기로 합의한 지 하루 만이다.
부산시는 12일 오후 6시15분께 노동자상에 대해 행정대집행(강제 철거)을 했다고 밝혔다. 철거 당시 노동자상을 지키고 있던 시민 김아무개씨는 “갑자기 100여명 넘는 인원이 몰려와 노동자상을 트럭에 싣고 가버렸다. 신분을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몇 명이 노동자상을 안고 버텼지만 금세 끌려 나왔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강제 철거된 노동자상은 남구에 있는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있다.
시는 “불법 조형물인 노동자상 건립에 대해서는 행정조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민 안전을 도모하고 물리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행정대집행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립특위에서 제안하는 공간과 시가 제안하는 공간 중 어디에 설치하는 것이 좋을지 시민에게 묻는 공론화 과정을 다시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관련 법에 따라 노동자상이 있는 도로의 점용 허가나 도로 관리는 구청에 위임돼 있는데, 시가 직접 행정대집행에 나선 것에 대해서는 “법률 해석에 따라 시가 직접 행정대집행에 나서도 된다고 판단했다. 반복적·상습적으로 허가를 받지 않고 도로를 점용하는 경우 관련 법에 따라 행정대집행 절차도 생략이 가능하다”고 했다.
노동자상 설치를 추진해온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건립특위)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김병준 건립특위 위원장은 “시는 오후 3시 공론화 과정을 거치자며 대화를 요청했다. 앞으로는 대화하자고 해놓고, 기습적으로 노동자상을 강제 철거했다.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을 세울 당시 서병수 전 부산시장도 이렇게 일을 처리하진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어 “반드시 시에 책임을 묻겠다. 끝난 것이 아니다. 노동자상을 되찾아 다시 그 자리에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건립특위는 지난해 5월1일 일본총영사관 앞에 노동자상을 세우려고 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혀 건립하지 못했다. 동구청은 지난해 5월31일 노동자상을 강제 철거했고, 건립특위는 같은해 7월 노동자상을 돌려받았다. 건립특위는 지난달 1일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노동자상을 놓고 임시 설치를 선언한 뒤 시와 동구청에 노동자상 거취 문제 협상을 요청했다. 1차 협상은 소득 없이 끝났지만, 지난 11일 열린 2차 협상에서 건립특위와 동구청은 정발 장군 동상 근처의 쌈지공원에 노동자상을 세우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에 부산시는 노동자상을 세우면 강제 철거에 나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글·사진/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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