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가 17일 오전 제주도청에서 국내 최초 영리병원으로 추진되던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 취소와 관련된 발표를 하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국내 영리병원 1호로 추진된 제주의 녹지국제병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개원을 미루다 허가를 취소당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7일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을 대상으로 벌인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에 따른 조서와 의견서를 검토한 결과 조건부 개설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조건부 개설허가 후 지금까지 병원개설이 이뤄지지 않은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했다. 앞서 도는 녹지병원이 의료법이 정한 개원 기한 90일을 지키지 않자 지난달 26일 청문절차를 진행했고, 청문 주재자가 청문조서와 의견서를 지난 12일 제주도에 제출했다.
도는 애초 신중론을 보이다 허가로 입장을 바꾼 뒤 다시 불허로 돌아서는 등 혼선을 빚었다. 원 지사는 지난해 12월5일 개원을 조건부로 허가하면서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다. 숙의형 공론조사위의 결정을 전부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한 바 있다.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6개월간 공론화 절차를 진행한 끝에 ‘개설을 허가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권고했다. 원 지사는 지난해 10월까지도 신중론을 고수해온 터여서 입장 변화의 배경에 관심이 쏠려왔다.
녹지병원이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터여서 결정 번복에 따른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당장 1천억원 안팎으로 예상하는 손해배상 책임과 지역주민 반발이 예상된다.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는 지난 2월 조건부 개원 허가를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결과에 따라 도가 의료법상 개원 취소를 했더라도 불허의 효력이 바뀔 수도 있다. 사업자는 승소하더라도 개원을 하기보다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녹지제주는 지난 3월 청문에서 ”도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요구로 778억원을 들여 건물을 준공하고 2017년 8월 진료를 시작할 시설과 장비, 인력 등의 확보를 완료했다“고 항변했다. 이어 ”개설허가가 1년 4개월가량 미뤄져 8억5천만원의 순손실이 발생했고, 예상하지 못했던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붙어 불복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개원이 어려웠다”고 반론했다. 녹지제주는 “개원 지연에 정당한 사유가 존재한다.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한 조건부 허가는 한·중자유무역협정으로 보호받고 있는 ‘투자자의 정당한 기대’를 저버렸다 “고 주장했다.
지역주민들은 ”병원이 들어와 동네가 발전한다는 말에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헐값에 넘겼다. 그 사이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버렸다. 허가가 취소되면 토지반환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도는 2017년 9월4일 ‘외국의료기관(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신청 관련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건복지부에 발송했다. 공문에는 2015년 12월18일 ‘외국의료기관의 사업계획서’를 승인한 정부와 도가 공동 책임으로 허가 신청에 대응하자는 요청이 담겼다. 당시 복지부는 ‘허가권자는 제주지사이므로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허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복지부는 다만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남겨 책임을 피해갔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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