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인문연구원 동고송의 상임이사 황광우 작가.
12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재활을 통해 지금은 왼손으로 글씨를 쓸 수 있을 정도가 됐다. 9년 전부터 사람들을 만나 동서양 고전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교사와 주부, 자영업자 들이 소모임을 꾸려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혼자서 읽는 것보다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맛이 좋았다. 하지만 인문학 전공 학자들의 삶이 힘겨워보여 늘 안타까웠다. “빛고을에 인문의 촛불을 밝히는 일이 삶의 마지막 실천이 될 것 같습니다.”
황광우(61) 작가는 17일 “광주에서 사단법인 인문연구원 동고송을 창립해 가난한 젊은 연구자들이 활동활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문연구원 ‘동고송’ 창립 상임이사
19일 오월의숲 총회…유용상 이사장
‘풍상에도 꿋꿋이 서 있는 소나무처럼’
민주화 현장 지키다 21년만에 졸업
12년전 뇌졸중…8년간 고전읽기 모임
“삶의 마지막 실천과제 될 것” 각오
인문연구원 동고송은 황 작가가 8년동안 이끌었던 고전연구원의 밑돌 위에 세워진다. 동고송(冬孤松)은 도연명의 시 ‘겨울 산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나네’(冬嶺秀孤松)라는 대목에서 땄다. 황 작가는 “겨울 눈보라 풍상 속에서도 그 결기를 잃지 않고 꿋꿋이 서 있는 소나무의 외로움처럼, 인문학 모임 역시 의연하게 인간이 아로새긴 무늬인 인문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결기를 잃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 옆엔 바람을 막아 줄 나무들이 함께 섰다. 광주전남행복발전소 공동대표를 지낸 의사 유용상 광산수완미래아동병원 원장이 이사장을 맡았고, 황 작가가 상임이사로 참여한다.
황 작가의 꿈은 원래 학자였다. 광주일고 시절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제적돼 검정고시를 통해 1977년 서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부만 할 수 없던 시대”였다. 서울 신림동 낙골 민중교회에서 야학활동을 했다. 또 데모를 하고 감옥에 갇혔으며, 공장으로 갔다. 직업훈련학교에서 선반기술(6개월)을 배워 ‘마찌꼬바’(소규모 공장)를 거쳐 인천 경동산업에 위장취업하기도 했다. 황 작가는 “세치의 혀로 민중 노동자를 씨부릴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노동자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인노련)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5·3인천사태를 현장에서 겪었다. 그는 5·18 이후 12년동안 “지하생활을 하며 실천가의 삶”을 살았다. 이 와중에 맏형은 스님이 됐고, 둘째형 황지우 시인은 죽음같은 고문을 당했다.
현장 활동가였던 그는 타고난 필력으로 대학생 때부터 인기 저술가였다.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쓴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은 시대의 고민과 나아갈 길을 제시한 책으로 화제를 모았다.
황 작가는 “실천가의 삶을 선택하면서 죽는 날까지 진리를 탐구하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다”고 했다. 1998년 21년만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2015년 전남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베스트셀러 <철학콘서트>(2006)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철학 공부의 결과물을 <철학의 신전>(2015)으로 묶어 냈다.
황 작가가 동고송 창립에 나선 또 하나의 이유도 “인문학의 향기를 시민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동고송은 또 지역단체들과 힘을 모아 광주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사업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그는 “광주가 지닌 역사와 의미에 비해 현재 광주는 너무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황 작가는 “인문학을 통해서 광주가 어느 지역 부럽지 않는 풍성한 도시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동고송은 19일 오후 6시 광주시 산수동 오월의 숲(필문대로 205번 길 10-1)에서 창립 총회를 연다. 이날 곽병찬 전 <한겨레> 대기자가 저서 <향원익청 1·2>를 주제로 강연하고, 황 작가가 형 황지우 시인과 대화를 나눈다. 동고송은 앞으로 동서양 고전 강독교실과 시민들 곁으로 찾아가는 인문강좌를 운영하고, 작가·저자와들과의 대화도 주선할 참이다.
황 작가는 “맑은 영혼을 지닌 작가를 벗으로, 스승으로 모시고 향과 흥이 넘치는 한판 잔치를 벌이고 싶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