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세계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려 했다.”
소설가 백은하씨는 지난 7일 1950년대 함평학살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전시의 방향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9~11일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열리는 <함평 양민학살 사건의 기억전>의 총괄감독이다. 그는 “사건 자체보다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함평군지>의 교정에 참여하면서 ‘함평학살’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 사건은 국군이 1949~51년 한국전쟁 와중에 함평군 월야·나산·해보면 일대에서 이른바 공비토벌 작전에 나선 남쪽 공권력이 양민 1277명을 살해한 비극이었다.
“사연들을 도저히 못 읽겠더라고요. 속이 울렁거리고 너무 답답했어요.“
그는 당시의 느낌을 토대로 지난 1월 단편 ‘귀향’을 발표했다. 이 작품이 지면에 소개되자 함평유족회에서 연락이 왔다. 유족들은 묻혀있는 사건을 세상에 알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평생 이런 소재를 피할 것인지, 써볼 것인지 결단해야 했어요. 작가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고, 하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죠.”
그는 미술·영상·사진 전문가 5명을 모아 ‘에이치(H·함평) 탐사팀’을 꾸렸다. 5차례 현장을 조사하고 무덤과 표석을 찍었다. 오른쪽 발목에 총상을 입은 장종석씨, 모평 쌍굴학살의 참상을 전해준 이금남씨 등 생존자와 유가족 14명의 증언을 들었다.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고 크라우드펀딩과 스노볼링도 진행했다. 한달 사이 댓글 1261개와 응원 3717개가 붙어 힘을 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시에 낼 영상 1편·사진 27점·증언집이 만들어졌다.
“한 자도 고치지 않고 오직 들은대로 썼다. 같은 부대가 걸어서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마을 일대에서 천인공노할 학살을 자행했지만, 주민들은 불 탄 마을에서 오늘도 끈질기고 꿋꿋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전남 나주 출신인 그는 1996년 <일간스포츠> 신춘문학상에 소설이 당선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의자>, <무지개에는 왜 검은색이 없을까요?>, <별의 시간>, 장편소설 <블루칩시티>, <마녀들의 입회식> 등을 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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