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임진나루와 임진진터 발굴조사 대상 지역. 그림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19세기 중반 제작된 동국지도 중 한강과 임진강 사이를 표시한 <경강부임진도>. 파주시 제공
고려와 조선 시대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조선 최초 거북선 훈련장으로 사용됐던 경기 파주시 임진나루와 임진진의 규모와 위상이 상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파주시는 31일 문산읍 임진리 임진나루터에서 ‘임진나루와 임진진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열고, 임진나루와 임진진에 대한 정비와 복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한백문화재연구원에 임진진터와 임진나루 발굴조사를 의뢰해 지난 3월29일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발굴조사 결과 2015년 시굴조사에서 파악된 임진나루의 관문인 ‘진서문’의 정확한 형태와 구조가 파악됐다. 또 진서문의 흔적과 이와 연결됐던 차단 성벽의 일부가 노출됐다. 진서문의 평면 규모는 너비 4.55m, 길이 7.4m 등으로 조선 시대 성문 중 대형 규모에 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문에 사용됐던 다양한 종류의 석재도 출토됐다. 아치형의 홍예문을 받치던 기초석, 진서문 통로에 깔았던 대형 보도석, 잘 다듬은 대형 측벽석 등 대부분 진서문 하단부를 구성했던 석재들이 원래 위치에서 드러났다.
성문을 달기 위해 돌에 기둥구멍을 낸 문확석 2기, 문지방석 등도 출토됐다. 이 돌들이 놓인 형태로 미뤄 진서문의 성문은 두 문짝을 안쪽으로 여닫는 형태로 확인됐다.
문지 서쪽 측벽은 1단 정도 남아 있었으며, 동쪽 측벽은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사라졌다. 서쪽 측벽과 연결되는 성벽도 배수로 공사로 사라졌지만, 일부 성벽 기초가 남아 있어 문지와 성벽이 연결되는 구조를 일부 파악할 수 있었다고 시는 설명했다.
현재 출토된 진서문의 흔적은 문지의 하부 기초부만 남았지만 상부 구조를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시는 기대했다. 같은 시기에 조성된 서울 도성, 북한산성, 기타 지방 읍성 등의 사례를 참조하면 상부 구조를 복원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임진나루는 한국의 전통나루 중 드물게 나루 주변의 역사 환경과 자연 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된 곳”이라며 “향후 임진나루 일대의 역사와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주민들의 생활과 조화된 마을 조성을 위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정비와 복원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 임진나루와 임진진터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진서문지 북쪽 장대석다짐 모습. 파주시 제공
한편, 임진나루는 장단나루(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남북을 연결하고 임진강을 건너는 교통의 요지로 꼽혀왔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선조 일행이 한밤 중 빗속에서 강을 건넜던 곳이며, 태종이 조선 최초의 거북선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주변이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진 임진나루는 한양 북방의 군사적 요새로 주목받았다. 1755년 영조는 임진나루에 ‘임진진’이라는 방어진을 설치하고 성벽 중간에 관문인 ‘진서문’을 세웠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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