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추진하는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조감도. 정부는 국비 8천억원에 자치단체 부지 제공 2천억원 등 1조원대 대형 국책사업으로 방사광 가속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충북도 제공
1조원대 국책사업으로 10만명 넘는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되는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유치를 놓고 충북 청주 오창, 경북 포항, 전남 나주, 강원 춘천이 치열한 4파전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학계·연구기관·산업계 등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한 치열한 경쟁이어서, 어느 쪽이 선정되건 적잖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29일 방사광 가속기 유치계획서를 접수한 뒤 다음달 6~7일 서류·발표 평가, 현장 확인 등을 거쳐 부지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방사광 가속기는 빛의 속도로 전자를 가속해 빛(방사광)을 얻어 내는 장치로, 신약 개발을 위한 단백질 구조 분석, 반도체 나노소자 구조 분석, 질병 진단 로봇 개발 등에 쓰인다. 물질의 기본 입자를 관찰하는 초정밀 거대 현미경으로, 국내엔 포항에 3, 4세대 각 1기씩 구축돼 있으며, 일본·미국·러시아에 각 7기, 독일에 6기가 구축돼 있다.
충북경제단체협의회가 지난 24일 충북도청에서 방사광 가속기 오창 유치를 결의했다. 충북도 제공
과기부는 △기본 요건(부지 26만㎡ 이상, 진입로, 전력 공급 등) △입지 조건(접근·편의성, 배후도시 여건, 연구 연계 등) △자치단체 지원 등을 검토해 부지를 선정한 뒤 2022~2027년 8천억원(자치단체 부지 등 별도)을 들여 방사광 가속기(빔라인 10기 기준)를 구축하고 2028년부터 운용할 계획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설치의 생산유발 효과는 6조7천억원에 이르고, 부가가치 유발액 2조4천억원·고용 창출 13만7천명 등 효과가 예상된다는 보고서를 2018년에 내놨다.
경북도와 포항시가 지난 27일 포항시청에서 국회의원 당선자와 대학, 연구기관, 경제단체 대표 등과 함께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경북유치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있다. 포항시 제공
2008년에 이어 ‘방사광 가속기 재수’에 나선 충북은 청주 오창(53만9천㎡)을 후보지로 내놨다. 전국 어디서든 2시간 이내 접근 가능한 지리·교통 여건, 오창과학산업단지·대전대덕연구단지·오송생명산업단지 등 연구·산업 연계가 강점이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오창은 주변에 반도체·화학·바이오 등 산업군이 집적돼 방사광 가속기 상승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3세대(1988~1994년), 4세대(2011~2015년) 방사광 가속기가 구축된 경북 포항은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단 안 33만㎡를 후보지로 제시했는데, 기존 구축된 가속기와의 연계성이 강점이다. 구미 중심의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2차전지 산업 등과 연계 효과도 강조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은 방사광 가속기 집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최적 조건을 갖췄다”고 했다.
방사광 가속기 호남권 유치위원회는 27일 국회 앞에서 230만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전남도 제공
전남 나주는 국가 균형발전 효과,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등이 장점이다. 230만명이 유치 서명을 했으며, 광주시장과 전남·전북지사는 정부에 건의문을 보냈다. 나주혁신도시 인근 120만㎡ 후보지는 2022년 3월 근처에 문을 여는 한전공대와의 산학연 연계 전략도 내놨다. 손명도 전남도 기획팀장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에서 먼 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은 ‘방사광 가속기 혁신도시’를 제시했다. 춘천은 수도권 40분 거리의 춘천 남산면 121만2천㎡에 가속기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강원대에 가속기 캠퍼스를 조성해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구상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춘천은 방사광 가속기 이용자의 절반에 가까운 소재 산업계가 수도권에 있어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이 빼어난 곳이다. 입지 여건도 좋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에 있는 방사광가속기 전경. 포항시 제공
과열 경쟁은 정쟁화 우려도 낳았다. 앞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광주에서 연 선거대책회의에서 전남 나주 유치를 약속했다가 충북도 등이 강하게 반발하자, 한나절 만에 실언을 사과한 뒤 공정한 경쟁을 약속한다고 발을 뺐다. 유치 지역 연고 국회의원과 당선자, 지방의회 등도 앞다퉈 지지 성명을 내는 등 세 대결에 나서는 한편 정치적 이해관계 개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윤주 안관옥 박수혁 김일우 기자
sting@hani.co.kr
강원도와 춘천시는 지난 7일 강원도청에서 한양대와 방사광가속기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강원도 제공
경북 포항에 구축된 방사광 가속기. 포항 방사광 가속기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