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작업·표지석 건립등 계획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장터(서문시장)에 계명, 신명, 성서학원, 대구고보 학생들과 졸업생 그리고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남산정교회(현 남산교회), 신정교회(현 대구 서문교회)등의 목사, 장로, 교인들이 모였다. 일본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이 자리에 참석한 이만집(1875∼1944·사진) 목사는 장터에 놓인 달구지 위에 올라섰다. 이 목사는 “지금이야 말로 조선이 독립할 수 있는 때입니다. 독립을 쟁취할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 만세를 부릅시다.”고 연설을 한 뒤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사방에 깔려 있던 교인, 학생, 장꾼들이 따라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호응했는데 이것이 대구 만세운동의 첫 순간이었다. 이날 참석한 800명의 행렬은 서문시장에서 동산병원을 지나 약전골목, 만경관, 달성공원 등을 뛰어다니며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이는 대구제일교회 90년사에 실린 대구 3.1운동 역사의 한장면이다. 대구에서 첫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 목사는 3년형을 선고받고 악명 높은 일제 감옥에서 복역 했다.
대구지역 기독교계가 이 목사 기념사업에 적극 나섰다. 지난달 25일 발족한 이만집 목사 기념사업회가 이 목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사업에 적극 나선다. 23일 지역 각계전문가들과 함께 현장 고증 작업에 나섬과 동시에 3월 1일에는 서문시장 현장에 표지석을 세울 예정이다. 또 3.1운동과 관련한 예술작품을 세우고 이 목사 기념관 설립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이만집 목사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은 정경호 영남신학대 교수는 “이 목사는 대구지역 3.1운동의 시조였던 민족 지도자였는데 지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그의 정신을 되살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것은 후세들의 의무”라고 말했다.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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