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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청결’ 위해 나무 싹둑…쪽방촌 주민들 “폭염에 우린 어디 가라고”

등록 2023-06-22 05:00수정 2023-06-22 10:50

19일 낮 12시께 인천 동구 북광장. 광장에서 흡연·음주 자제를 요청하는 펼침막이 걸린 나무가 윗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가지치기가 돼 있다. 이승욱 기자
19일 낮 12시께 인천 동구 북광장. 광장에서 흡연·음주 자제를 요청하는 펼침막이 걸린 나무가 윗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가지치기가 돼 있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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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서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아스팔트 복사열로 주변 건물들 윤곽이 흔들려 보일 정도였다. 햇볕 피할 곳을 찾아 주변을 둘러봤지만, 광장의 나무 그늘은 하나같이 옹색했다. 도로와 접한 북동쪽 일부를 제외하고, 광장의 모든 나무들이 수종에 상관없이 짧게 가지치기가 돼 있었던 것이다. 기자가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을 찾은 19일 오후, 이곳의 낮 최고기온은 31도를 기록했다.

동인천역 북광장은 오랫동안 인현동 쪽방촌 주민들이 이용하는 휴식 공간이었다. 의지할 냉방기구라야 낡은 선풍기가 전부인 쪽방촌 주민들에게 광장의 나무 그늘은 수시로 찾게 되는 한낮의 무더위 피난처였다. 광장 옆에서 노숙인 무료 급식소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대표에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었다. 서 대표는 “주민들이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술도 마시고, 그러다 보니 다툼도 일어나고 했던 것인데, 행정 하시는 분들은 그걸 두고 보기 힘들었던 모양”이라며 “사람들 모여드는 것을 막으려고 최근에 관할 구청에서 여러 일을 벌였다”고 했다.

가로수 가지치기는 관할 지자체인 인천 동구청이 ‘주취자 추방’을 위해 짜낸 ‘묘수’였다. 구청은 술자리가 벌어지던 가로수 그늘 주변의 벤치 7~8개도 없애버렸다. 햇볕 피할 곳이 사라지니 주민들은 대형 전광판 그늘이 드리워지는 화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동구청은 조만간 주민들이 벤치 대용으로 앉아 쉬던 화단 경계석도 없애고, 화단 주변에는 출입을 막는 울타리도 칠 계획이라고 한다. 동구청의 ‘광장 정화 활동’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음달 1일부터는 광장 전체가 금연·금주 구역으로 지정된다. 계도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광장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광장을 이용하던 쪽방촌 주민들은 구청의 조치가 과도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인천역 주변에서만 40년 넘게 살았다는 최성일(61)씨는 “주민들이 허구한 날 술 마시고 싸움박질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는 우리한테도 소중한 곳이라서 어떻게든 주변에 피해를 안 끼치려고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가 나서서 말린다. 그런데 사람들 쫓아내려고 나무 그늘을 싹 다 없애버렸다. 우리 처지가 너무나 비참하다”고 말했다. 북광장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 ㄱ씨는 “사람들 모여서 쉬라고 광장을 만들었을 텐데, 쪽방촌 노인들이 모여 있는 게 보기 싫다고 나뭇가지를 쳐버리는 건 너무 야박한 것 같다”고 했다.

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는 광장에 나오는 쪽방촌 주민들을 “대부분이 특별한 일거리가 없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소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름에 덥고 답답한 쪽방 안에만 있을 수 없으니, 주변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는 광장으로 나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는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술집에도 갈 수 없어 역전 광장에 모이게 된 것인데, 여기서마저 쫓아내면 어디로 가란 말인가. 도시 미관과 위생도 중요하지만, 폭염이 다가오는 6월에 볕을 피할 그늘까지 없애버리는 건 너무나 비인간적인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가지치기된 동인천 북광장 나무 모습. 이승욱 기자
가지치기된 동인천 북광장 나무 모습. 이승욱 기자

지자체는 이번 조처가 불가피했다고 강조한다. 동구 관계자는 “그동안 북광장에 여러 조처를 취했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일부의 반발이 있더라도 강력한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주취자 문제가 해결되면 광장 벤치는 다시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찬진 인천 동구청장은 최근 <경인일보> 기고문에서 “동인천역 북광장은 화도진 축제, 나눔장터, 각종 페스티벌 등이 열렸고, 그 덕분에 지역과 주민들이 가까이 연결되고 따뜻하게 연대할 수 있었다”며 “이 소중한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 동구의 사명”이라고 썼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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