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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정너’ 광화문광장 재조성…돌고 돌아 결국 ‘승효상 안’

등록 2019-07-30 05:00수정 2019-07-31 13:04

광화문포럼 제안, 서울시 검토서 뒤집어
2005년 제안된 승효상 안이 결국 채택돼
건축계 “큰그림 정해진 설계공모 무의미”
서울시 “포럼 안 실행 어려워 변경” 해명
2005년 승효상 건축가가 제안한 세종문화회관 앞의 광화문광장 안. 서울시 제공
2005년 승효상 건축가가 제안한 세종문화회관 앞의 광화문광장 안. 서울시 제공
새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이 국제 설계 공모를 하기도 전에 이미 ‘큰 그림’을 정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시민이나 전문가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나 새로운 시도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 광화문광장은 2021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2018년 4월10일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 2만4600㎡ 규모의 시민광장, 광화문 앞을 가로지르는 사직로·율곡로와 정부서울청사, 열린시민마당에 4만4700㎡의 역사광장을 조성하는 안이다. 이 계획에 따라 광화문 앞에는 조선시대 월대(궁궐 앞 다리)와 해태상 등이 복원되고,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남북으로 기다란 광장이 조성된다. 서울시는 이 기본계획안을 기반으로 지난해 10월 국제 설계 공모를 시작했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만들어진 현재의 광화문광장. 서울시 제공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만들어진 현재의 광화문광장. 서울시 제공
■ 설계 공모 전에 사실상 확정된 ‘큰 그림’

서울시의 국제 설계 공모에 따라 지난 1월 새 광화문광장을 만들기 위한 당선작이 발표됐다. 씨에이(CA)조경기술사사무소 컨소시엄의 ‘딥 서피스’(Deep Surface, 깊은 표면)였다. 당선작은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바닥에 촛불시민혁명을 상징하는 무늬를 그려넣는 등 세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큰 그림’인 광화문 앞의 역사광장, 세종문화회관 앞에 조성된 시민광장이라는 서울시의 기본계획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이 공모에 참여한 모든 응모안이 마찬가지였다.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붙은 시민광장은 공모의 필요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가 정해놓은 큰 그림 안에서만 설계를 할 수 있었던 국제공모에 대해 불만이 나온다. “설계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푸념이다. 신건수 경남대 교수(건축학부)는 대한건축학회지 <건축> 올해 4월호에 “기본계획안을 보는 순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즉, 월대를 복원하는 ‘역사광장’,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확장되고 반대편 교통로는 유지된 ‘시민광장’, 역사광장과 시민광장을 분리하여 사직·율곡로와 연결된 우회도로가 결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래서 공모지침만 보면 답이 없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되고, 기본계획안을 보면 정해진(틀린) 답을 제시하고 풀이 과정을 만들어내라고 한 꼴이 되는 것이다. 당선작이 왜 참신하지 않은지는 바로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중요한 공간을 만드는 데 70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70여개의 응모작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종의 암묵적 보이콧이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2017년 광화문포럼에 제안한 ‘전면 보행자 광장’ 안. 서울시 제공
2017년 광화문포럼에 제안한 ‘전면 보행자 광장’ 안. 서울시 제공
■ 돌고 돌아 결국 2005년 제안된 ‘승효상 안’

설계 공모가 이렇게 답답하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서울시가 광화문 앞 역사광장, 세종문화회관 앞 시민광장이라는 대원칙을 이미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2005년 처음 제시된 ‘이로재-문화재청 안’(일명 ‘승효상 안’)이다. 당시 이로재의 대표인 승효상 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과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청장이 공동으로 제시한 안이었다. 당시 두 사람의 영향력으로 유력하게 거론된 안 가운데 하나였으나 결국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안 대신 중앙광장 안을 채택해 현재의 광화문광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중앙광장 안은 왕복 10차로로 둘러싸였다는 점이나,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점, 어울리지 않는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 앞 역사 복원 계획이 없다는 점 등 때문에 계속 비판받아왔다.

이에 따라 2011년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초기부터 광화문광장을 재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2016년 7월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해 각계 전문가 32명과 서울시 고위 간부 14명으로 꾸려진 ‘광화문포럼’을 띄웠다. 광화문포럼은 시민 대상으로 설명회와 토론회 등을 거쳐 10개월 만인 2017년 5월 차도를 지하화하고 지상을 모두 보행자 광장으로 만드는 혁신적인 안을 제1안으로 채택해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광화문포럼의 제안을 1년 가까이 검토한 뒤 2018년 4월 역사광장과 시민광장을 분리하고, 시민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이는 방안을 기본계획안으로 채택했다. 13년 전 나왔던 승효상 안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 기본계획안을 바탕으로 국제 설계 공모를 실시해 2019년 1월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 설계 공모의 심사위원장은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었다.

이에 대해 한 건축가는 “돌아보면 서울시의 총괄건축가였고 현재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인 승효상 안이 내정돼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광화문포럼의 제안도 충분히 고려했어야 하는데, 갑자기 뒤집힌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원로 건축가도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이 사실상 승효상 위원장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승효상 안이 기본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승 위원장이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거쳐 국가건축정책위원장, 국제설계공모 심사위원장까지 맡으면서 사실상 다른 안이 나오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2018년 서울시가 발표한 세종문화회관 앞의 새 광화문광장 기본계획안. 서울시 제공
2018년 서울시가 발표한 세종문화회관 앞의 새 광화문광장 기본계획안. 서울시 제공
■ 시민위까지 만들었지만 준공은 2021년 예정

이런 지적과 비판이 나오자, 시는 뒤늦게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론화 과정을 시작했다. 시는 애초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된 광화문포럼을 확대해 지난해 7월 ‘광화문시민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 시민위원회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회의는 지난 1월 새 광화문광장 설계 공모 당선작 설명회, 3월 1분기 워크숍, 6번의 상임위원회밖에 없었다. 광화문시민위가 56번의 회의를 열었는데, 이 가운데 46번은 전문가들만 참여한 분과회의였다. 광화문시민위원인 시민단체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김은희 센터장은 “중요한 쟁점, 과제, 문제점들이 토론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왜 광화문광장이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왜 갑자기 수도권급행철도 복합역이 광화문광장 지하에 들어서야 하는지, 왜 역사광장과 시민광장이 분리돼야 하는지 등에 대해 시민위원들이 잘 모르고 토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가 “너무 성급하게 광화문광장을 재조성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2020년 착공해 2021년 준공할 계획이다. 광화문광장 재조성 논의는 2016년 광화문포럼 출범, 2017년 광화문포럼 안 발표, 2018년 기본계획안 발표, 2019년 국제 설계 공모 당선작 발표 등 절차를 밟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광화문광장 안과 관련해 광장 형태, 역사 복원, 교통 처리 등 핵심적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2일 10여개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여러 이견에 대해 토론이 필요하다며, 일단 사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국장은 “우리가 보기에는 현재의 사업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년 안에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며 “서울시가 강조해온 보행자와 대중교통 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사실상 토건 사업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강옥현 광화문광장 추진단장은 “광화문포럼의 전면 보행자 광장 안에서 편측 광장 안으로 바뀐 것은 서울시 내부 검토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광화문포럼 안은 지하 도로의 안전성이나 경관 등 문제로 실행하기 어려운 안이었다. 승효상 안으로 가기 위해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 국제공모에서 당선된 새 광화문광장 설계안인 `딥 서피스’. 서울시 제공
지난 1월 국제공모에서 당선된 새 광화문광장 설계안인 `딥 서피스’. 서울시 제공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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